치매는 정도에 따라 몇 단계가 있다고 한다. 1단계. 화장실에 다녀온 뒤 바지 지퍼 올리는 것을 잊는다. 치매 초기 증세인지 단순한 건망증인지 구별이 쉽지 않은 수준이다. 2단계. 시장에서 고등어를 사 가지고 집안이 들어온 후 고등어를 신발장에 그대로 올려 놓는다. 대신 신발을 냉장고에 넣는다. 3단계. 옷을 다리미질 하는 도중 전화가 온다. 이 때 전화 대신 다리미를 수화기로 알고 귀에 갖다 댄다. 4단계. 남편이나 부인을 보고 "누구시죠?" 한다. 평생 같이 산 사람을 못 알아본다. 그 다음 단계는 물어보나 마나다. 오래 전에 들은 유머다. 치매 단계를 그럴듯하게 묘사하고 있다.
10년 전쯤 노벨문학상 후보였던 미당 서정주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당시 85세였던 미당은 "10년 전부터 치매 예방을 위해 세계의 산 이름 1682개를 매일 왼다"고 말해 놀랐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 산부터 시작해서 다음 높은 순으로 외어 간다는 것이다. 우리 말이 아닌 여러 나라 언어일텐데 어렵지 않느냐고 물었다. 미당은 "처음에는 시간이 오래 걸렸으나 익숙해져서 얼마 걸리지 않는다"고 대답한 것으로 기억한다.
치매는 정상적인 뇌 기능에 이상이 생겨 지능, 의지, 기억 등 정신적인 능력이 현저히 감퇴되는 것으로 정의된다. 사람이나 장소, 시간을 아는 능력이 떨어질 뿐 아니라 판단력에 문제가 생기고 성격에도 변화를 가져온다. 이미 심장병, 암, 뇌졸중에 이어 4대 사망 원인중 하나로 꼽히고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더욱 주의해야 할 질환이다.
치매(dementia)라는 용어는 라틴어의 'dement'에서 유래했다. 이 말은 '마음에서 벗어난'이란 뜻을 포함하고 있다. 흔히 말하는 '노망들었다' '미쳤다'는 의미와 상통한다. 요즘에는 뇌 자체에 병이 생겨 차츰 기억력이나 인지능력이 떨어지고 망가지는 임상적 증후군으로 좁혀 사용한다. '황혼의 덫' '나를 잃어버리는 병'이다.
미국 통계에 의하면 65이상 노인의 5%가 중증치매, 15%가 경증치매라고 한다. 우리의 경우 치매환자는 40만명으로 추산된다. 이중 치매상담센터에 등록, 관리되는 환자수는 5% 이하다.
9월 21일은 '세계 치매의 날'이다. 세계치매협회와 세계보건기구(WHO)가 치매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제정한 것이다. 우리는 얼마나 대비하고 있는지 돌아볼 일이다.
/조상진(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