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엄마들 대변하고 퇴장하는 '엄마가 뿔났다'

28일 종영..60대 여성 시청자가 제일 많아

엄마가 달라졌다. 한 집안의 며느리, 한 남자의아내, 세 남매의 엄마에서 벗어나 당당한 여자로서의 삶을 살게 됐다. '국민 어머니'김혜자도 이번에는 뭔가 달랐다.

 

뿔난 엄마와 그 가족들의 이야기로 주말 저녁 시청자들을 TV 앞으로 끌어 모았던 KBS 2TV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연출 정을영)는 김수현 작가의 조금 다른 가족드라마로 큰 인기를 모았다.

 

1년 간 휴가를 가겠다는 한자(김혜자)의 폭탄 선언과 함께 40%를 넘보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화제의 중심에 선 이 드라마가 어느덧 28일 마지막 회를 앞두고 있다. ◇"부모를 너희 밥으로 생각하지 마라" 김수현 작가가 4년 만에 집필하는 주말극으로 관심을 모은 '엄마가 뿔났다'가 제시한 화두는 단연 한자가 원룸을 얻어 집을 나간 뒤 자유를 만끽하는 '엄마의 휴가'였다. 오랜 시간 희생하며 살아온 한자의 '장기휴가'를 놓고 시청자들은 갑론을박을 벌였다. 이에 대해 김수현 작가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한자의 탈출'에 대해 명쾌하게 설명했다.

 

김 작가는 "가족은 어느 면으로는 굴레며 멍에일 수 있으나 가족은 바로 나 자신이며 나의 거울이기도 하다"라면서 "내 인생만 인생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엄마라는 이름으로 평생을 봉사한 한자가 가족속에 함몰되어버린 자신의 존재감을 좀 찾아보겠다는 게 왜 비난거리가 돼야 할까요"라며 "부모는 왜 휴식조차도 원해서는 안 되는 건지요"라고 물었다.

 

끝으로 김 작가는 "더 이상 늙은 부모님께 아무 것도 요구하지 마십시오. 부모가 늙으면 부모가 원하기 전에 자식이 스스로 먼저 알아 채워드려야 할 때입니다"라면서 "그저 나는 이 말을 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부모를 늬들 밥으로 생각하지 마라'"라고 글을 맺었다.

 

◇'엄마'들의 열렬한 호응 '엄마가 뿔났다'는 2월2일 첫회 24.8%로 출발해 '국민드라마' 탄생 조짐을 보였지만 상승세를 이어가지 못하고 20% 중반에 머물렀다. 그러나 '엄마의 휴가'를 계기로 순식간에 30% 중반까지 치솟았으며 지난 7일에는 38.7%를 기록하며 40%를 넘보기도 했다.

 

현실에서는 행동으로 옮기기 힘든 '일탈'을 드라마 속에서 한자가 이뤄 주부들에게 대리만족을 느끼게 해줬기 때문일까. '엄마가 뿔났다'에 대한 중년 여성 시청자들의 반응은 특히 뜨거웠다.

 

이는 시청률 분석 결과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AGB닐슨미디어리서치에 따르면 '엄마가 뿔났다'를 가장 많이 시청한 층은 여자 60대 이상으로 전체 중에서 14.2%를 차지한다. 이어 여자 40대가 12.8%, 여자 30대와 50대가 각 10.9%와 10.2%로 여자 30대 이상 주부 층이 무려 50%에 육박하는 수치를 보였다. 개인별 시청률 역시 여자 60대 이상 시청자의 시청률이 26.3%로 가장 높았고 여자 50대가 21.5%로 그 뒤를 이었다. 남성 60대 이상 시청자가 20.6%로 높은 점도 주목할만하다. ◇새로운 시대상의 반영 요즘 엄마들은 더 이상 자식들의 아이들을 '무조건' 돌봐주지 않는다. '엄마가 뿔났다'는 이처럼 달라진 시대상과 그 속에서의 '엄마'의 이야기를 담아내 공감을 이끌어냈다. 김원용 CP는 "그동안 엄마의 희생적인 면이 주로 그려졌는데 이번 작품은 엄마에게도 한 사람의 여자로서의 삶이 있다는 면을 부각시킨 것이 가장 큰 변화이자 모티브"라고 설명했다.

 

또한 "김수현 작가의 기존 드라마가 모가 난 강한 캐릭터들이 부딪치는 재미가 있었다면 이번에는 그런 면이 완화되고 모나지 않은 캐릭터들을 통해 삶을 성찰할 수 있으면서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작품으로 그려진 것 같다"고 말했다.

 

엄마의 안식년이 부각됐지만 다른 가족들의 이야기도 시청자의 고개를 끄덕이게만들었다. 우아한 사모님 연기로 많은 화제를 모았던 극중 장미희와 김용건의 관계는 김혜자와 백일섭과는 정반대로 역전돼 또 다른 재미를 자아냈다. 이순재와 전양자의 황혼 로맨스, 신은경이 류진의 전 부인의 딸과 갈등하다 결국 감싸 안는 과정도 새로운 가족상을 그려냈다. 이처럼 세상이 변하고 엄마도 변했다지만 변함없이 소중하고 그리운 건 가족 간의 사랑이다. 휴가를 떠난 한자의 눈빛에 가족에 대한 사랑이 묻어나지 않았다면 시청자도 뿔이 났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