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메아리] 행정구역개편 졸속추진 안된다 - 김영기

김영기(전북참여자치시민연대 집행위원장)

이미 2004년과 2006년 논의되다 중단되었던 행정구역 개편 논의가 다시 진행되고 있다. 민주당은 물론 한나라당과 정부도 여기에 동조하며 개편논의에 불을 지피고 있다.

 

민주당의 유용균 의원과 한나라당의 허태열 의원 및 각계 전문가들의 행정개편과 관련한 안들이 다시 되새김질되며 마치 곧바로 행정구역개편이 이루어질 것처럼 요란스럽다. 혹자는 2010년 지방선거 이전에 개편을 완료하고 지방선거를 치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큰 틀에서 행정구역 개편이 있어야 한다는 것에는 대부분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각론으로 들어가면 시기 문제를 비롯하여 각기 상이한 주장들로 혼란스럽다. 행정구역 개편에서 유의해야 할 것은 행정효율성 제고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행정구역개편 논의에 있어 유념해야 할 것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행정구역 개편 논의의 중심이 정치권과 국회가 아니라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지역주민들이 되어야 한다. 정치권은 당리당략에 따라 논의를 심하게 변질시킬 확률이 많고 개편의 핵심이 지역민들의 삶의 질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사안이므로 주민참여와 충분한 의견 수렴, 전문가들과 자치단체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의사개진을 바탕으로 다양한 문제제기를 수렴하여 틀을 형성하고 정치권과 국회는 최종단계에서의 역할에 머물러야 한다. 행정구역 개편은 단순히 행정구역만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길게는 천년을 이어왔고 짧게는 100여년이 지난 역사와 전통과 관계되는 문제이고 정치권의 지각변동이 일어나는 문제이다. 그러므로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이해와 직결된 문제를 국민들의 편에 서서 꼼꼼히 따지기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둘째, 행정구역 개편은 분권과 자치라고 하는 거스를 수 없는 역사적 대의에 충실히 복무하는 가운데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현재 핵심적인 안은 도(道)를 폐지하고 50-60만 도시 60여개를 중심으로 재편하여 계층을 단순화하자는 것인데 이것은 지방을 해체하고 중앙집권을 강화할 확률이 지극히 농후하며 이를 보완하겠다는 광역지방행정청은 도리어 중앙정부를 공룡화하고 이를 통해 얻고자하는 효율성도 무효화시킬 것이다.

 

셋째, 수도권과 지역, 영남과 호남 등 지역 간의 불균등한 발전의 문제는 우리 사회의 건강한 발전을 가로막는 병폐였는데 이것의 해결이 없이 은폐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현재에도 이명박정부들어 서울과 수도권 규제 완화로 수도권 과밀이 심화 확대되고 있는 판에 불균등 발전은 더욱 가속화할 것이다. 개편방식은 주변 지역을 통합할 때 사회적 합의가 어렵고 그러다 보면 가장 손쉬운 기준인 인구가 주요 변수가 될 것이 뻔하며 이것은 빨대 효과에 의해 낙후광역단체들은 공중분해되고 주변 지역에 흡수될 확률이 높다. 또한 농업, 농촌, 농민 문제 등이 본질적인 해결로 가기보다 흡수해체를 통해 형식적인 도시외곽이나 미개발지역으로 전락되며 식량문제를 비롯한 1차 산업의 완벽한 몰락을 초래할 것이다.

 

넷째, 지금까지 분권과 자치 확대는 광역자치단체인 도를 중심으로 해서 확대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 왔고 분권과 자치의 역사가 짧고 강력한 중앙집권으로 신음한 우리사회의 역사성을 볼 때 이것은 타당한 것이었다. 아직도 중앙이 권력의 모든 것을 집중해 가지고 있으며 자치와 분권이 일천한 조건에서 이후 진행되어야할 교육, 경찰과 사법자치 그리고 재정분권 등은 도를 중심으로 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을 중소도시로 다극화한다면 경쟁력의 제고가 아니라 대부분의 힘은 여전히 중앙권력이 갖고 미미한 수준에서의 자치만이 가능하거나 허용될 것이 자명하다. 예로 경찰 자치만 하더라도 중앙경찰과 지방경찰의 분리 및 수사권의 독립 등이 아닌 방범 및 교통 등 소소한 업무만이 지방에 이양될 확률이 높다. 또한 세계적인 추세도 프랑스와 일본의 예에서 보듯이 독립성과 자율성을 갖는 광역자치단체(나라에 따라 주나 현) 중심으로 세계화에 대항하며 중앙정부의 지원 아래 성장을 추구하는 추세이다. 그러므로 도리어 대전과 충남, 부산과 경남, 광주와 전남 등 광역자치단체와 결합된 광역시를 폐지하여 통합하고 인적 물적 자원의 재배분이 훨씬 용이한 문제이며 이는 이미 현장에서 힘을 얻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상과 같이 행정구역 개편은 단순히 행정 효율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의 문제이며 권력과 권한의 재배치와 역할 분담 등 미래 사회의 비젼과 직결된 문제이다. 그러므로 많은 이들이 낡은 헌법을 민주화된 시대변화에 맞게 개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과 발맞추어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폭넓은 의견 수렴을 통해 차분히 총의를 모아나가며 통일 이후까지 고려해야 할 사안이다. 지금은 거름을 주며 알맹이를 영글게 만들 때이지 뚝딱 열매를 딸 때가 아니다.

 

/김영기(전북참여자치시민연대 집행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