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전주세계소리축제'가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판소리 중심으로 한 세계의 모든 소리가 함께 어우러지면서 소통의 물꼬를 여는 기회. 어렵거나 고리타분하다고 여겨졌던 판소리에 대한 편견을 깨는 자리였다. 판소리의 대중화와 현대화를 위해 쉽고 재밌게 풀어쓴 책은 없을까.
영화 '서편제'의 작가 이청준씨가 쉬운 말로 다듬고 남도 사투리를 맛깔스럽게 살려내 「심청가」 「춘향가」 「흥부가」「수궁가」「옹고집타령」(파랑새어린이) 동화시리즈를 펴냈다.
사람의 참 도리인 효(孝)를 따라 사는 법을 담은 「심청가」 , 시련이 다가와도 충절을 지키는 이야기 「춘향가」 , 「흥부가」 는 사람사는 모습이 각기 다른 이야기를 담았다. 「수궁가」 는 지혜롭게 사는 법을, 「옹고집타령」 은 세상의 모든 잣대를 자신의 고집에만 두던 이가 나눔의 소중함을 깨달아 간다는 이야기다.
작가는 곳곳에 이야기꾼으로 등장하면서 옛 이야기를 충실하게 전달하되 권선징악적 이분법 구도를 따르지는 않았다. 놀부와 흥부, 심봉사, 옹고집 등 미련하고, 탐욕이 많으며, 때로는 주책스러운 아주 평범한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친근하게 느끼도록 했다.
특히 결말 부분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보다 필요에 따라 과감하게 생략했다. 이야기의 속도감을 더하고, 독자들에게 상상의 여지를 남겨 전혀 다른 결말로 맺게 한 것.
「흥부가」 에선 놀부가 개과천선했다는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다. 장수는 흥부의 착한 마음에 감동해 놀부에게 새 삶의 기회를 준다. 놀부가 나쁜 마음을 품을 경우 목숨을 위협할 긴 세모창살을 놀부집에 놓아둠으로써 그의 미래를 독자의 상상력에 맡긴다.
"그 후 용왕은 충성스런 자라 별주부의 정성으로 병이 낫게 되었으며, 토끼는 산중에서 마음을 곱게 고쳐먹고 오래 오래 편히 늙어간다는 소문이었지만, 그것이 사실인지 어쩐지는 누가 알 수 있으랴."
「수궁가」 처럼 느닷없는 결말로 독자들의 호기심을 일으키기도 한다.
입에서 읊조리며 살아나는 리듬감은 판소리에서 중요한 대목. 작가는 판소리라는 장르를 염두에 두고 책의 각 작품마다 부제를 달았다.
" ……나는 물에 빠지면 침(沈·잠길 침)자가 되지만 뭍에서 멀쩡할 때는 사람 성씨가 되는 심(沈·성씨 심)씨 성의 도화동 심학규라는 사람이오."
「심청가」의 장님 잔치에 가는 길에 주막에서 만난 장님들은 서로 자기를 소개하면서 맛깔스런 언어의 미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그림은 천편일률적인 동양화나 판화가 아니다. 박승범(수궁가) 채진주(옹고집타령) 구보람(심청가) 조가연(흥부가) 나영(춘향가) 화가가 과감한 붓터치로 캐릭터를 살아있는 듯 보여주고, 배경을 과감히 생략해 동양적인 여백미를 드러냈다. 부드러운 생동감과 색상 대비도 뛰어나 책을 읽는 즐거움을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