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메아리] 새마을운동과 바이오가스 기술 - 곽동희

곽동희(서남대 교수)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우리 모두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 1970년대 초등학생 시절에 친구들과 가사 의미도 정확히 모르면서 따라 불렀던 새마을노래다. 당시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너무도 익숙한 노래였다. 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동네 어른들이 노래가사에 나오는 것처럼 마을 입구의 길도 넓히고 초가지붕도 기와나 스레트 지붕으로 바꾸어가는 것을 호기심어린 눈으로 지켜보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었다. 이 새마을운동 가운데 지금까지도 어렴풋하지만 조금은 의아스럽게 남아있는 것이 있다. 당시 부엌의-내가 살던 시골마을에서는 부엌을 정지 또는 정제라고 불렀다.- 아궁이는 볏짚이나 장작을 태운 연기로 검게 그을려 있어 새마을운동의 일환으로 많은 집들이 새로이 개조되었다. 어릴적 신기한 마음에 이웃집 개조된 부엌을 들여다보니, 아궁이에 큼지막한 가마솥이 없어지고 지금의 가스레인지와 비슷한 버너와 자그마한 밥솥이 놓여져 있었다. 그 버너에는 손가락 굵기의 긴 관이 연결되어 있었고 그 관을 따라가 보니 막다른 화장실이었다. 부엌과 함께 개조한 화장실도 볏짚태운 잿더미가 있는 퇴비화식 화장실에서 분과 뇨가 함께 탱크에서 저장되는 수거식 화장실로 바뀌었고 관은 그 화장실 탱크에 연결되어 있었다.

 

이제와 알아보니 새마을운동 당시 그 시설의 보급 배경은 이러했다. 1974년, 새마을운동이 한창일 때, 유엔 개발기구(UNDP)에서 추진한 태국 바이오가스 프로젝트를 벤치마킹하여 경기도 용인에 메탄가스 플랜트를 세웠고, 이후 우여곡절을 거쳐 가정에서도 쓸 수 있는 소형 바이오가스 시설도 개발되었다. 이것은 분뇨와 짚, 잡풀 등을 발효 탱크에 넣어 상온에서 발생하는 메탄가스를 연료로 활용하고, 또 남은 일부는 퇴비로 만들어 쓰는 시설이었다. 분뇨가 강력한 불길을 내는 것에 많은 사람들은 신기해했다. 그을음 없이 깨끗하게 연소되고, 쉽게 구할 수 있는 이 바이오가스 기술은 큰 환영을 받았다. 그러나 겨울철에는 가스발생이 적어 밥이 설익거나 난방이 되지 않는 등 오래가지 않아 크고 작은 문제가 나타나고, 석탄과 같은 화석연료에 밀려나 종국에는 자취를 감추었다. 여기에는 '똥오줌으로 지은 밥'이란 유쾌하지 않은 이미지도 한 목 거들었다. 사실 새마을운동 당시의 가정용 바이오 가스설비는 우리 조상의 분뇨 퇴비화 기술을 에너지화 설비로 전환시켰던 것이었다. 새마을운동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이 가정용 바이오가스 설비는 사라졌지만 지금도 유엔환경계획(UNEP)에서는 개발도상국과 후진국에 이 설비와 유사한 형태의 친환경적 위생(eco-sanitation) 시설의 보급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최근 새마을운동과 유사한 정책이 많이 전개되는 가운데 공교롭게 예전의 가정용 바이오가스 설비와 유사한 바이오가스 플랜트가 산업현장에 점차 확대 보급되어지고 있다. 음식물쓰레기, 기축분뇨와 유기성 폐기물 등을 대상으로 한 것으로써, 예전과 조금 달라진 것이라면 혐기성 발효과정에서 생산되는 메탄을 직접 이용하기 보다는 전기를 생산하여 활용 또는 판매함으로써, 예전보다는 심미적 관점에서 훨씬 나아진 것이다. 아직 보급과정에서 몇가지 해결과제가 남아 있으나 기후변화에 대응한 온실가스 감축을 위하여 화석연료 사용을 지양하고 바이오가스와 같은 신재생에너지 기술이 점차 확대될 전망이다. 이러한 가운데 새마을운동 당시 보급된 바이오가스를 석탄과 석유가 밀어냈던 것처럼, 요즈음 확대되는 신재생에너지 상대편에 원자력 에너지가 떠오르고 있다. 새마을운동 당시 화석연료에 떠밀려 났던 것처럼 이번에는 원자력이 그러한 태세로 다가오고 있고, 지금의 아이들도 30년 뒤에는 나와 비슷한 기억을 되새길지 모를 일이다.

 

/곽동희(서남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