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전주시 기본 경관계획 공청회'가 열렸다. 한옥마을의 야트막한 기와지붕, 물 억새가 흐드러진 전주천, 어디서나 우뚝 솟은 모악산, 고개만 조금 돌리면 바라다 보이는 완산칠봉 다가산 황방산 건지산 기린봉 등 아름다운 전주의 경관은 가을 볕 아래 찬란하다.
하지만 좀 더 외곽으로 나가면 전주의 관문에 공단이 버티고 있고 신시가지 고층 아파트들이 성냥갑처럼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그나마 도시를 벗어나면서 농촌 마을과 들판으로 이어져 답답함을 덜어준다. 이 농촌마을에는 수많은 개발 압력과 세월의 풍상에 큰 상처를 입었지만 아직껏 당당히 마을을 감싸고 있는 마을 숲이 있다.
이러한 마을 숲은 하천이나 실개천을 주변으로 형성돼 있어 마을의 경관 뿐 아니라 멀리서 바라보는 원경도 아름답다. 경관계획에 꼭 포함되어야 하는 이유다.
▲주민에 의해 인공적으로 조성
마을 숲은 주민들이 조성한 인공적인 숲이다. 마을 숲은 동제나 굿이 열리는 토속 신앙적 마을숲, 공간적으로 안정감을 얻기 위해 만든 풍수적 마을 숲, 하천이나 바닷가에 조성된 수변 보호 숲으로 나눌 수 있다.
전주시의 마을 숲은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동부 산간지역의 마을 숲(본보 2007년 9월27일자)과 달리 급격한 도시화와 경작지 확대로 인해 많이 훼손됐다.
또한 마을 소유였던 숲 내 토지가 사유화 되면서 공익적인 활용에 제약이 따른다. 후계 목을 심어 숲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도 부족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근 주민들의 보호 의지가 높고 남은 나무들의 활력이 좋다는 것이다.
▲아중 마을의 숲거리, 느티나무 숲
아중저수지에서 왜망실로 들어가다 보면 둘레가 1.3m~2.7m, 수령이 150~200년쯤인 되는 느티나무 7그루가 아중마을을 지키고 있다.
'숲 거리'라고 부르는 이 마을 숲은 '수구(水口)가 막혀야 동네가 좋다'는 풍수적 관점에서 조성된 인공 숲이다. 예전에는 북쪽 산자락까지 수십 그루가 숲을 이루었으나 60년 전에 홍수로 유실되면서 현재 7그루만 남게 됐다.
주민들에 의하면 원래 개인 소유였던 이 땅을 노거수를 보호하기 위해서 마을 돈으로 부지를 구입했다고 한다. 마을 숲의 기능을 경험적으로 느끼던 주민들의 아름다운 선택으로 보인다. 왜망실 용하마을 안쪽에 자리 잡은 마을 숲은 주변의 경로당과 정자와 잘 어울린다.
▲긴 다리만큼 길었던 장교 마을 숲
경지정리를 하면서 사라진 긴 다리가 있었다고 해서 이름 지어진 평화동 장교 마을에도 수구막이 마을 숲과 당산나무가 있다. 숲은 마을의 기운이 북쪽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마을 입구에서 뒤쪽으로 이어지는 서북방향으로 조성됐다.
한때는 40여 그루의 팽나무, 버드나무, 때죽나무가 있었으나 1974년 경지정리를 하면서 대부분 베어져 지금은 마을 뒤편에 8그루만 남아있다.
▲다시 나무를 심은 뜻은…전당 마을
만경강에서 가까운 전미동 전당마을은 북쪽방향으로 마을 숲이 조성되어 있다. 마을이 조리형국 이어서 마을의 기운이 밖으로 새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과거에는 30여 그루가 숲 거리를 이루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많이 고사돼 4그루만 남아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주민들은 애향회를 조직해 1994년에 도로를 따라 50그루의 느티나무를 다시 심었다고 한다.
▲당산제를 지내는 용와 마을 숲
뒤틀리고 고단한 삶을 살았던 민초들만큼이나 뒤틀린 용와 마을의 노거수 있는 마을 숲을 중심으로 당산제가 열렸었다. 집집마다 볏짚을 걷어 줄을 꼬아 마을 앞 논에서 줄 당기기를 했다고 한다.
당산나무는 마을 남쪽의 자리한 7그루 고목 중 가운데 둘레 3.7m, 높이 약 15m의 제일 큰 느티나무다. 들판 가운데 있으니 품앗이하다가 쉬기도 하고 마을의 대소사를 의논하는 곳으로 쓰였다. 절기마다 어울러 노는 곳이기도 했으니 요즘 말로 하면 주민문화센터인 셈이다.
우석대학교 조경디자인학과 노재현 교수는 "도시 공원은 마을 숲에 원형을 두고 있어요. 마을 숲의 형성과정을 볼 때 도시공원녹지의 생태 환경적 기능, 사회적 기능, 경관적 기능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마을 숲에 살짝 가려진 마을은 넉넉하고 기품이 있어 보인다. 지금 세우는 도시경관 계획이 다음세대까지를 위한 것이라면 사라져가는 마을 숲에 대한 보존과 복원 대책이 담겨져야 할 것이다.
*자문 노재현(우석대 조경디자인학과 교수)
/이정현(NGO객원기자·환경운동연합 정책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