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세습(世襲) 즉, 대물림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할아버지 직업을 그대로 아들 손자들이 자연스럽게 이어가는 풍습이 우리와는 대조적이다. 일본 역대의 많은 총리들이 정치인의 후손이다는 것은 우리에게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정치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도 대물림 현상은 자연스럽게 이루지고 있다.
임진왜란 때 조선에서 끌려간 도공들의 후손들이 지금도 그대로 도맥(陶脈)을 이어가고 있지 않은가. 대표적인 경우가 이곳 남원출신 심수관이다. 가족들의 대물림 풍습은 불교 사찰까지도 연결된다.
일본에는 8만개의 사찰이 있다. 깊은 산속에 있는 절은 모르지만 대부분의 말사(末寺)는 대처승이 주지(住持)이다. 그래서 일본에서의 절은 수행공간이자 생활공간이 되기도 한다. 절의 주지직도 아들에게 그대로 승계시킬 수 있다.
또 아버지가 참치회집을 하면 아들들도 대학 졸업후 참치회집을 이어간다. 이렇듯 온 집안의 대물림 직업에는 남이 훙내를 못내는 그집안 특유의 비법(秘法)이 있게 마련이다. 정치 지향적 ,권력지향적인 우리 풍습에서는 하찮은 직업으로 폄하해 버릴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다. 이렇듯 일본은 온 집안이 한가지일에 몰두하는 것이 있다.
일본경제를 이끄는 원동력은 마치코바(町工場) 즉 , 동네공장이라고 한다. 이동네 공장은 인원이 10명 안팍이다. 대물려서 소규모 동네공장을 한다는 것이다. 일본이 1949년 첫 번째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이래 올해를 포함하여 8명의 노벨 수상자를 배출하였다. 올 노밸 물리학상 수상자인 마스카와 도시히데(益川敏英)와 고바야시 마코토(小林誠) 교수는 대학 선후배로 만나 35년간 소립자연구의 한 우물만을 팠다고 한다. 마스카와가 소립자의 6개 쿼크 존재설을 제시하고 고바야시가 이것을 이론적으로 증명해냈다. 이들의 이런 태도가 바로 장인(匠人)이 정신인 것이다.
일본의 이번 성과를 놓고 일본정부의 과학자에 대한 풍부한 후원 때문이라고만 해서는 안 된다. 일본의 전통적 대물림 정신, 즉 세슈(世襲)가 낳은 쾌거라고 보아야할 것이다. 우리에게도 이런 세슈, 즉 대물림 정신이 필요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