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금의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는 데엔 이론이 없다. 하지만 현상의 핵심을 뭉뚱그려 표현하는 방법엔 차이가 많다. 정부와 정치권, 기업이 제각각 경제 위기 논쟁을 벌이고 있고, 언론들도 나름대로 논리를 내세우며 진단서를 내놓고 있다.
우리가 서있는 위치가 단순한 하강국면일까, 아니면 경기침체일까, 그것도 아니면 공황으로 접어드는 길목일까.
경제 주체 가운데 가장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쪽은 정부다. 기회있을 때마다 지금은 심각한 상황이 아니라는 점을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 국민들 입장에선 곤두박질 치는 경제지표를 바라보면서 1997년 혹독한 시련을 안겨준 IMF 구제금융의 악몽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국면이다.
우리 경제는 이른바 시장경제 논리와 시스템을 뼈대로 돌고 있다고 믿고 있다. 특히 미국식 자본주의에 따라 구성된 운용시스템을 갖춘 '경제 서버'가 시장 곳곳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형식이다.
하지만 이같은 믿음을 흔드는 사례가 위기의 터널 속에서 목도되고 있다. 금융 시스템에 화재 경고음이 울리고, 이 불길이 실물경제에까지 번지고 있다는 명백한 징후가 현실화 되면서 정부에 대한 믿음이 근간부터 흔들리는 상황에서 말이다.
세대별로 느낌은 다르겠지만, 어느 연령대엔 낯익은, 또 다른 편엔 너무 생소한 조치가 버젓이 나오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환율이 폭등하면서 가시화 됐다. 보도에 따르면 정부가 국내 대표적인 기업들에게 보유 달러를 시장에 내놓으라고 다그쳤다. 해당 기업들은 시장에 내놓은 달러 규모에 대해 공개적인 발표를 꺼리고 있지만, 줄잡아 수억 달러씩은 내놓은 듯하다.
미국식 자본주의를 근간으로 우리 경제 시스템이 짜여졌다면, 이번 조치는 관치 경제로의 회귀라고 평가할 만하다. 즉 과거와는 다른 방식의 접근법이 가미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신관치'라 이름 붙일 수 있을 것이다. 단기적인 관점에선 어느 정도 시장 안정화에 도움이 되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과정에 문제가 있다. 대통령과 경제 수장이 나서 기업들이 달러 사재기를 하고 있다고 윽박지르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쏟아냈다. 즉 경제주체들이 환율 변동을 틈타 환투기를 한다는 경고이다. 이후 환율이 떨어져 달러를 내놓은 기업들이 단기적인 차익을 실현한 꼴이 되었지만, 이는 추후 문제이다.
더욱이 이번 조치는 심각한 위기가 아니라는 정부의 기존 입장을 실제적으로 뒤엎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더 중요한 건 이는 국가가 부도 위기에 내몰렸을 때나 나옴직한 조치이다.
자본주의의 근간은, 특히 미국식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시장 시스템이 보내는 신호에 따라 경제 주체들이 움직이는게 합리적이란 대전제를 깔고 있다. 일련의 사태를 바라보는 국민의 가장 큰 궁금증은 지금 우리나라의 경제가 어느 상황에 처해있는가이다. 정부만 믿고 각자 맡은 일만 열심히 일하면 되는지, 아니면 폭발 직전의 경제에서 보따리 싸들고 피난길에 나서야 하는지 헷갈릴 뿐이다.
정부의 잇단 조치는 국민들에게 신뢰를 주는 못한다는 점이다. 국민으로선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다. 지금 가장 경계할 것은 믿음의 부재이다. 정부는 그동안 위기의 심각성을 제대로 감지하지 못했거나, 알고도 모른 척했거나, 이 둘을 잇는 선상의 어디쯤일 게다.
각국이 긴급 대책을 쏟아내면서 경제지표는 요동치고 있지만, 많은 경제 전문가들은 아직 위기의 뇌관은 제거되지 않았다는데 의견을 모은다.
/김경모(기획취재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