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방이라도 사람들이 몰려들 것 같은 빈 모정(茅亭) 안으로 한 줄기 바람만 머물다 간다. 늙을 대로 늙어버린 지친 모정은 세월의 이끼만 두껍다.
모정을 찾아 시골로만 다니던 그가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뭐 이런 걸 다 찍냐"는 심드렁한 질문. 그러나 다 쓰러져 가는 모정을 보며 마음이 짠해지는 것은 그리운 그 때 그 시절이 아직 거기 남아있기 때문이다.
전라북도와 국립민속박물관이 '2008 전북민속문화의해'를 맞아 '전북의 민속문화' 첫번째 시리즈로 「모정의 세월」을 펴냈다. 20여년간 장날 사진을 찍으며 지역의 사라져가는 것들을 보듬어온 사진작가 이흥재씨(54)의 또다른 기록이다.
"장날이나 모정이나 큰 흐름으로는 같은 이야기입니다.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기억이죠. 변해가는 모습은 막을 수 없다 하더라도 그 과정을 잘 기록하는 건 우리들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모정 사진은 90년대 중반부터 최근까지 작업한 것들. 해 질 무렵 모정 너머로 보이는 아파트 불빛이 낯선 경계를 만드는 도심 근처 모정(전주시 삼천동 부평마을)이나 삼을 째고(진안군 백운면 윤동마을) 고추 꼭대기를 따며(완주군 구이면 학전마을) 정을 나누는 시골 모정까지, 모정에 얽힌 이야기들은 여전히 마음 한 구석을 아려오게 만든다. 그는 "모정(茅亭)의 세월은 모정(母情)의 추억이다"고 말했다.
"뜨거운 한낮에 일하고 낮잠 한소금 자고나면 얼마나 편안한 지 모릅니다. 어머니 품과 같아요. 내가 나이를 먹어가며 우리 어머니도 늙어가듯, 모정도 세월과 함께 쇠락해 가고 있죠."
이씨는 "모정을 보면 편안했던 어머니 품이 떠오른다"고 했다. 그는 "자기가 잘 아는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듣는 사람을 감동시키기란 쉽지 않다"며 "사진도 마찬가지여서 나에게 익숙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영남지방이나 다른 지역에는 모정 자체가 없고 '모정'이라는 단어도 없다고 합니다. 호남지방에서도 전남에 비해 전북 모정 수가 훨씬 많습니다. 모정이야말로 전북지방의 농경문화를 대표하는 상징물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씨는 "모정의 형태나 위치는 지역 사람들의 삶과 심성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고 설명했다.
사진의 감동은 손 끝이 아닌, 가슴에서 나오는 것. 때로는 가장 촌스럽게, 때로는 가장 세련되게 모정을 담았다. 개방형인 모정은 골격이 독특한 형태를 지니고 있어 사진으로 찍었을 때 조형성도 가지고 있다. 「모정의 세월」에 실린 사진들은 11월 7일까지 전북도청 기획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갯벌, 들, 산-자연을 일군 땅, 전북'에서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