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 풍낙헌 상량

부침의 세월 딛고 복원되는 옛 전주시 청사 '풍낙헌'

전주류씨 제각으로 이전 복원되면서 넣어둔 상량문. (desk@jjan.kr)

우리들이 흔히 전라감영이라고 부르는 것은 전라도를 다스리기 위하여 설치된 행정기관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옛 전라북도청 일원과 객사를 포함하는 것이었다. 반면 전주부는 전주부윤이 임명되어 다스렸지만, 조선시대 전 기간 동안 대부분은 전라감사가 전주부윤을 겸하고 있었다. 따라서 자칫 전주부를 다스리는 행정기관이 전라감영 내에 있었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전주부 통활 행정기관은 이아(貳衙)라 해서 별도의 공간으로 구획되어 있었고 실제 전주부의 통치업무는 전주판관(全州判官)이 담당하곤 했다. 관찰사가 전라도 전체를 돌아다니면서 전라도 행정을 맡아보아야 했기 때문에 판관은 감영에서 관찰사의 공백을 메우면서 중앙과 지방을 연결하기도 하고, 때로는 관찰사의 전횡을 견제하는 등의 업무를 수행하였다. 전라도와 같이 전라감사가 전주부윤을 겸할 경우 판관이 실질적으로 전주를 통할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 공간은 현 전주우체국 사거리의 남동쪽 블록으로 산업은행과 기업은행이 있는 방형구역과 구 전북은행 본점이 있는 블록을 포함한 약 7천여 평이었다

 

전주판관이 근무하던 건물은 풍락헌(豊樂軒)이라 하였으며 현 중소기업은행 자리에 위치하였다. 음순당(飮醇堂)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었던 풍락헌은 전면 7칸의 팔작지붕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고, 또한 좌우 1칸의 크기는 중앙 5칸에 비해 기둥 사이가 약간 좁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음순당이란 편액은 1901년 당시 전주군수였던 취송(醉松) 이삼응(李參應)이 제작한 것으로 조주승이 썼다. 전주판관의 설치 때부터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풍락헌은 1758년 판관 서노수가 개건하였고, 1890년 화재로 소실된 뒤 1891년 판관 민치준이 중창하였다고 한다. 이 풍낙헌은 1895년 행정구역개편으로 전주부가 폐지되고 전주군이 설치되면서, 1935년 전주군 전주읍이 전주부로 승격할 때까지 전주구청으로 사용되었다.

 

전주부사에 의하면 1934년 봄 이 풍락헌은 매각되어 구이면 덕천리(옛 태실리) 전주류씨 제각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옮겨질 당시 음순당 현판은 떼어 내어 옛 객사 내에 두었다고 하나 현존 유무를 할 수는 없고, 구이 태실부락으로 옮겨진 풍락헌은 1992년 1월 7일자 전북일보의 보도로 세상에 다시 알려지게 되었다. 전주류씨 제각으로 사용된 풍락헌은 전면이 7칸이 6칸으로 줄어들고, 내부 역시 제실에 맞도록 많은 변형이 이루어졌다. 이전되지 74년만인 올해 3월 풍락헌은 전주류씨의 기증으로 현재 전주향교 옆에 이전 복원 준비 중에 있다. 이전을 위해 해체했을 당시 발견되었던 상량이 바로 오늘 소개하는 문서이다. 이 상량은 감독 이근택, 도편수 김장렬, 절편수 설인항 등의 이름과 을해년 4월 29일이라 기록된 것으로 보아 전주부사의 기록과 일치한다. 원래 1891년 민치준이 중창할 때의 상량이 아니어서 서운하긴 하지만, 이 상량이 발견으로 인하여 이 건물이 풍낙헌이었음을 증빙하는 역사적 증거를 확보한 셈이다.

 

/홍성덕(전북대박물관 학예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