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 삿갓 다랑이의 추억 - 박인숙

박인숙(전북지방중소기업청장)

옛날이야기. 한 농부가 비 오는 날 삿갓을 쓰고 논일을 나갔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벼를 둘러보고 물꼬를 손질하는 사이에 비가 그치자 농부는 나머지 일을 마치고 논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늘 그랬듯이 자신의 논을 하나, 둘, 세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논 하나가 모자라는 것이다. 그의 논은 분명히 열세 다랑이인데 몇 번을 세어보아도 열두 다랑이였다. 도대체 논 한배미가 어디로 갔을까 생각하면서 벗어놓았던 삿갓을 집어 들자 문제의 논 한배미가 그 아래 있는 게 아닌가? 그제야 조금 전 벗어둔 삿갓이 논 한 다랑이를 덮고 있는걸 알아차렸다.

 

변변한 논하나 없던 산촌에서는 웬만한 비탈쯤은 논으로 만들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게 만든 논을 다랑이 논, 그중에 삿갓으로 가릴만한 크기의 작은 논을 삿갓다랑이라 불렀다. 조금 과장하여 그런 산골에서 나고 자라서인지 논 한마지기 논두렁에 콩을 심었더니 누구는 몇 말을, 아무개는 한가마를 수확하였다네 하고 가을이면 이야기꺼리였던 기억이 새롭다. 농사를 잘 지었다기보다 논에 비해 논두렁이 그만큼 많았다는 것이다.

 

지난해 미국 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시작한 금융위기로 전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금년 초만 해도 미국 부동산금융의 부실화로 인한 큰 위험 요인이 우리나라에는 없을 것으로 분석되었다. 그러나 투자은행의 부실화로 이어지고 하반기 들어서는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으로 전개되면서 걷잡을 수 없는 혼돈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특히 환율이 고공행진을 계속하면서 각종 금융파생상품들로 인한 피해기업들이 날로 늘어가고 있다. 다행히 우리지역은 피해기업이 숫자상으로는 적지만 피해를 입은 기업 입장에서는 크게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에 따라 금융위기가 실물로 이어지지 않도록 정부에서도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어 불안 심리는 다소 진정될 전망이다. 혹자는 지금 상황을 대 공황에 버금간다고 하지만 우리나라는 충분히 극복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아직은 지배적이다.

 

다만 지금 시점에서 꼭 한번쯤은 우리의 뒤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사회 전반에서다. 그동안 많은 이들이 우리나라는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고 경고했었다. 독일등지에 간호사로, 광부로, 또는 열사(熱沙)의 나라 건설근로자로, 그렇게 땀 흘려 일하던 세대가 엄연히 생존해 있음에도 우리는 그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린 듯 풍요만을 구가하고 있었다. 어쩌면 잊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일손이 좀 필요하다는 공장은 중국과 동남아등으로 다 보내버려서 자전거, 우산, 섬유방적, 소형가전 등, 많은 산업에서는 생산기반이 무너진 지 이미 오래다. 그나마 남아있다 해도 외국인 근로자 아니면 공장을 가동하기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젊은이는 보수에 관계없이 험한 일은 하지 않으려 하고, 기업도 생산에 의한 매출이익보다는 다른데 관심을 더 기울여 왔다. 바로 청년실업 100만이 넘었다는 우리의 현실이다. 산업생산을 기반으로 하지 않은 나라경제가 얼마나 허약한지는 이번에 몇몇 나라의 예에서 확인되었다.

 

이견(異見)이 있을 것이나, 높은 교육열, 정교한 손재주, 성실하고 근면한 국민성이 자원빈국임에도 오늘의 성장을 이끌어 왔다고 본다. 그런데 높은 교육열만 남겨두고 다 버린 건 아닌지, 그렇다면 다음세대 성장을 이끌 고도의 기술은 과연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를 냉정하게 판단하자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간과해 왔다. 삿갓다랑이 논두렁 한 뼘도 그냥 놀리지 않던 지난시절을 생각하며 주변에 낭비요소는 없는지, 생산성을 더 높일 부문은 없을지 꼼꼼히 살펴보자는 것이다. 飯疏食飮水 曲肱而枕之(거친 밥을 먹고 물마시며 팔베개 하고 누워있음)에 만족한다면야 모르겠지만.

 

/박인숙(전북지방중소기업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