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만은 지키자-생태보고서] 신음하는 모악산 등산로(상)

드러난 나무뿌리…샛길로 우회…배수로에 흙 쌓이고…

흙이 모두 쓸려나가면서 모악산의 등산로가 성인의 키만큼 패어 있다(사진 위). 기존 등산로 옆에 새로운 등산로를 만들어 놨지만 시민들이 무분별하게 이용하면서 양쪽이 다 훼손돼 있다(가운데). 환경운동연합 조사단원이 GPS를 이용해 등산로 훼손 실태조사를 벌이고 있다(맨 아래). (desk@jjan.kr)

'어디에서 보아도 나는 모악이다.' 지난해 도립미술관이 예술적 정체성을 전북에 두고 있는 대표적인 작가 11명의 전시회를 기획하면서 붙인 제목이다. 끊어질듯 이어진 붓선 하나만으로도 단박에 모악산임을 알 수 있었던 포스터만 보았을 뿐 막상 전시회는 가보지 못했다.

 

그래도 좀처럼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것은 김제 평야 위에 우뚝 솟은 모악의 당당함,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있는 모악의 정겨움, 후천개벽의 새 세상을 잉태한 모악의 생명력을 명징하게 담아내는 말처럼 들려서일까.

 

하지만 전북 도민에게 생활의 공간처럼 익숙하면서도 정기가 담긴 신령스러운 산이라는 모악산이 막상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너무 많은 시민들의 등산화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속살이 파헤쳐 지거나 아파트를 짓는 개발 계획으로 신음하고 있다.

 

지속적인 산림 생태계 조사도 뜸하다. 본보는 최근 실시한 전북환경연합의 모악산의 등산로 훼손 실태 조사와 전북녹색연합(준)의 모악산 생태조사 결과를 중심으로 두 차례에 걸쳐 보도한다.

 

▲생활 속 공간처럼 익숙한 모악산

 

모악산 공원관리 사무소 자료에 의하면 지난해 모악산을 찾은 도민은 약 67만 명 정도. 김제 금산사, 전주 중인리 구간을 다 합하면 120만 명은 족히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누구나 다 오를 수 있으면서도 쉽게 정상을 내주지도 않는 모악산은 살림살이의 고단함을 잠시 뒤로한 주부에서, 노년의 무료함을 달래고 건강을 지키기 위한 노인들, 직장생활의 스트레스를 날리기 위한 중년 남성로 새벽부터 밤늦게 까지 북적댄다.

 

이처럼 산이 감당하기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모악산을 찾다보니 훼손된 등산로의 문제는 심각하다. 여기에 우리 사회에 내면화된 경쟁 심리와 빠른 속도를 고집하는 산행이 조급한 산행 문화로 이어져 정상으로 향하는 길목의 훼손과 샛길이 모악산을 위협하고 있다.

 

▲샛길 등산로 때문에 산림 훼손

 

"중인리에서 헬기장으로 올라가는 비단길의 훼손이 가장 심각해요. 비가 내리면 물길이 되다보니 파임 현상이 커지고 있습니다." 전북환경운동연합과 등산로 실태 조사를 하고 있는 전북대 박사과정 김재병씨의 설명이다.

 

모악산 등산로에 있는 나무의 뿌리들이 모두 밖으로 돌출돼 있다(사진 위). 등산로 훼손을 막기 위해 목책이 설치돼 있지만 일부 등산객들이 등산로를 이용하지 않고 목책 밖의 기존 등산로를 이용하면서 훼손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 (desk@jjan.kr)

 

나무나 돌로 등산로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계단 구조에 채워진 흙이 쓸려나가서 덜렁 구조물만 남은 곳도 많다고 한다. 토사 유실로 주변의 나무들이 앙상하게 뿌리가 드러나 있어 스트레스를 받아 제대로 성장하기 어려운 상태라고 덧붙인다.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다. 등산로가 점점 넓어지거나 아니면 훼손된 기존 등산로를 피해 옆으로 우회하는 샛길 등으로 인해 등산로가 악순환을 겪고 있다.

 

전북환경운동연합 최두현 녹색도시국장은 "사람들이 계단을 딛고 오르기가 힘들게 되니깐 자연스럽게 계단 옆으로 다닌다"며 "때문에 등산로가 넓어지는 등 훼손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물 빠짐 시설, 등산로 정비의 핵심

 

등산로가 깊게 파이는 세굴 현상은 빗물이 그대로 흘러가면서 더욱 심해진다. 따라서 세 굴된 등산로 정비의 핵심은 물 빠짐 설계와 시공이다. 중인리 금곡사 구간과 구이 상학마을에서 오르는 등산로의 경우 초입 부분은 등산로 정비가 잘 되어 세굴 피해가 적다.

 

등산로 안쪽으로 빗물이 흘러들지 않도록 측면에 목재로 턱을 만들고 중간 중간 집수정을 설치했기 때문이다. 등산로 안쪽에 내린 빗물은 계속해서 아래로 내려가지 않고 중간에 옆으로 빠지도록 목재로 홈처럼 파인 배수로도 만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배수로에 흙이 쌓여 기능이 떨어진다는 것. 최두현 국장은 지속적인 관리를 촉구하기 위해 오는 8일 환경연합 회원들과 함께 배수 기능을 높이기 위해 배수로에 쌓인 흙을 걷어내는 캠페인을 벌일 예정이다.

 

꼼꼼하고 세밀한 현장 관리가 아쉬운 곳은 또 있다. 모악산 관리사무소는 세굴이 심한 일부 등산로를 폐쇄하고 새로운 등산로를 만들어 등산객을 우회시키는 조치를 취했다.

 

그런데 폐쇄를 확실하게 하지 못하고, 폐쇄한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도 불명확하게 한 곳이 있어 등산객의 불만을 사고 있다.

 

비단길 구간은 아래쪽은 폐쇄를 하지 않고, 위쪽은 목책으로 폐쇄를 해서 아래쪽에서 올라간 등산객들이 위쪽에서 길이 막히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그 경우 다시 내려가서 다른 길로 가기보다는 목책 옆으로 돌아가거나, 심지어 목책이 파손된 곳도 있다. 폐쇄의 효과가 전혀 나지 않는 것이다.

 

▲훼손이 심한 구간, 자연휴식년제 도입을 검토해야

 

당연한 이야기지만 조사단은 구이 상학에서 천룡사로 오르는 길처럼 등산객이 적은 길이 등산로의 상태가 좋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느 쪽에서 오르던지 경사가 가파른 곳은 표토가 깎여나가 등산로 상태는 좋지 못하다.

 

따라서 현재의 이용객 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배수 시설, 돌과 나무를 이용한 계단이나 등산로 정비가 시급하다. 등산로 훼손이 너무 심한 구간은 자연휴식년제 도입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여기저기 새로 등산로를 내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좀 더 편하고, 빨리 오르기 위해 만들어진 샛길이나 새로운 등산로가 거미줄처럼 얽혀져 모악산을 생태적으로 고립된 섬을 만들기 때문이다.

 

산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도 들리지 않고, 다람쥐의 또랑또랑한 눈망울도 보기가 어려워질지 모른다. 야생동물이 사라진 숲은 신비로움도 즐거움도 없는 산이다.

 

모악산은 시민들에게 건강과 휴식, 정서적 안정감을 아낌없이 제공한다. 이러한 무료 서비스는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 스스로 복원할 수 있는 능력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모악산의 부담을 덜어주는 현명한 이용이 절실한 이유다.

 

/이정현(NGO객원기자·환경운동연합 정책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