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과 평화를 지향하는 여성운동을 꿈꾼 지 벌써 20년이다.
전북민주여성회 5년, 전북여성운동연합 5년, 전북여성단체연합 10년을 더하면 전북여성단체연합의 완벽한 역사가 된다. 아이를 등에 들쳐 업고 여성운동을 했고, 사무실 비용이 없어서 쪽방 공간에 얹혀 살아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뜻한 열정이 있었다.
1988년 2월 전북민주여성회(이하 민여회)가 태동하면서 진보적 여성운동이 첫 발을 디뎠다.
미녀는 없는 '미녀회(민여회)'였지만, 여성노동자·전업주부·전문직여성 등 각계 각층이 모여 세상을 바꾸는 부드러운 힘을 꿈꿨다. 성폭력예방센터를 설립·운영했던 박상희 목사, 한국 여성 농민운동사를 정리한 엄영애씨, 김금옥 한국여성단체연합 사무처장 등은 이곳을 거쳐간 보석같은 존재들.
"1988년 2월29일에 이곳이 출범했죠. 그런데 2월29일은 매년 오지 않으니, 1·2주년을 치를 수 없었어요.(웃음) 회원들의 힘으로 회비를 걷어 서노송동에 '전전세(전세공간에 또다른 전세공간을 얻는 일)'로 사무실을 얻었어요. 돈 아낀다고 중고시장에서 가구를 사고, 연탄난로에 갈탄땠던 시절입니다."
김금옥 사무처장은 힘든 시절인 동시에 뿌듯하고 가슴 벅찼던 시절이었다고 떠올렸다. 전북여성단체연합 상임의장이기도 했던 고영자씨(전 도의원)는 사무실 전세금을 갚기 위해 주부모임 활동 경력을 통해 식혜와 수정과를 만들어 파는 기지를 발휘하기도 했다.
1991년 남원에서 21년 전 자신을 강간한 이웃집 아저씨를 찾아가 살해한 '김부남사건'은 전북여성운동연합의 존재를 가로매김한 결정적인 사건. 이들은 '김부남 대책위'를 구성해 성폭력 피해자가 살인자로 피고인이 되는 뼈아픈 현실을 널리 알려 국가가 대책을 마련하도록 적극 강구했다. 전주 군산 익산여성의 전화와 전북성매매여성인권지원센터를 개설해 가정 성폭력 예방을 위한 쉼없는 발걸음을 이어갔다.
그 결과 1995년 '성폭력 방지를 위한 특별법'이 제정돼 한바탕 잔칫집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다.
1993년 3월 민여회의 소모임과 부문여성조직 연합체인 전북여성단체연합(센터장 박영숙·이윤애·조선희)은 여성운동의 대중적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재편됐다. 제도권 밖에서 활동하던 이들은 대중적이며, 합법적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새로운 도약이 준비된 것.
처음으로 지방의회 선거가 실시됐던 1995년엔 '할당제 도입을 위한 전북여성연대회'를 결성해 여성후보 고영자(전 도의원) 김완자(전 도의원) 이재천(전 시의원)씨가 지방의원으로 당선되는 쾌거를 일궜다.
전북여성단체연합이 여성운동에 날개를 단 시점은 1998년부터. IMF 경제위기로 인한 실업대란 때문에 '전북실업극복여성지원센터'를 설치해 실직여성가장들에게 경제적 토대를 마련해 건강한 가족 만들기에 힘썼고, 여성주간과 성폭력 추방기간 등 여성문제에 여론이 집중되는 시기에 '호주제 폐지서명운동' 등도 추진했다.
최근엔 대중들과 거리감을 좁히기 위한 여성운동을 위해 색다른 여성운동도 시도하고 있다. 지역적 한계로 인해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있는 강사를 초빙하는 어려움은 있지만, 강연회를 통해 개인의 변화를 꿈꾸는 '변화의 시나리오'와 친환경 대안적 소비 실천강좌를 꿈꾸는 '에코홈학교'는 시민들로부터 긍정적인 호응을 얻고 있는 코너다.
이미정 전북여성단체연합 정책국장은 "친환경적인 생활방식으로 지속가능한 삶을 일궈가는데 주목했다"며 "사무실이나 가정에서 일회용 컵 쓰지 않기와 같은 아주 작은 일부터 천연화장품, 천가방, 대안생리대 만들기 등을 꾸준히 실천해 여성운동의 범주를 넓혀가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