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힘 2050] 헌 옷의 변신…맞춤형 수선 '리폼'

'익숙한 새 옷' 생겼어요

전주 인후동에서 수선집을 운영하고 있는 최효순씨가 소비자와 리폼에 관한 상담을 하고 있다. (desk@jjan.kr)

극심한 경기불황을 바라보는 서민들의 가슴은 설렘보다 걱정으로 가득하다. 경기침체와 금융 시장의 위기로 인해 도산하는 기업들이 속출하고, 그 여파로 가계자금마저 압박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다 갑자기 몰아닥친 강추위가 몸을 더욱 움츠러들게 했다. 이럴 때 옷이라도 따뜻하게 입고 싶어서 막상 장롱 문을 열어보지만, 마땅히 입을 옷이 없다. 옷장 안에는 대부분 유행이 지났거나 사이즈가 맞지 않은데도 아까워서 차마 버리지는 못한 옷들만 가득 하다. 어떤 옷은 십년이 훨씬 지나도록 한 번도 입지 않은 옷도 있다. 그렇다고 언제 풀릴지 모르는 혹독한 경제난에 얇은 지갑을 열어 새 옷을 살 수는 없는 일.

 

고민 끝에 김미숙씨(48·전주 효자동)는 장롱 안에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옷들을 몽땅 꺼냈다. 비록 유행은 지났지만 원단이 좋은 것들을 따로 모아 리폼을 하기로 맘먹었다. 튤립 모양의 스커트나 치렁치렁한 플레어스커트는 길이를 짧게, A라인 스커트는 타이트하게 고쳤다. 쟈켓은 전체 길이와 어깨선에 품까지 몸에 딱 맞게 줄이고 보니 새 옷이나 다름없었다. 김씨는 "아침에 출근할 때마다 입을 옷이 없어서 난처했는데, 오래 된 옷들을 리폼 해 놓으니 코디해 입을 옷이 다양해져서 좋다"고 말했다.

 

전주 서부시장 입구에서 옷 수선을 하고 있는 강경희씨(52·전주 효자동·가명)는 경제가 어려울수록 옷을 수선해서 입는 사람이 많단다.

 

"예전에는 쟈켓의 진동을 어깨 아래에 두거나 뽕을 넣어서 매우 활동적인 여성상을 부각시켰는데, 몇 년 전부터는 진동을 어깨 위로 바짝 올리고 허리 라인을 살려 여성스러움을 강조하는 패턴이 유행이다. 10-20년이나 지난 옷들은 품이나 길이가 넉넉하기 때문에 얼마든지 '맞춤형 서비스'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손님이 원한다고 해서 무조건 리폼을 해주지는 않는다. 첫째, 원단의 실용성을 보고 결정한다. 둘째, 손님의 체격 체형 얼굴에 적합한 디자인을 위해 서로 충분히 상담을 한 후 실루엣을 잡는다.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헌옷을 고치는 일인데, 돈만 들이고 옷을 입을 수 없으면 낭패이기 때문에 신중을 기한다.

 

"수선 범위에 따라 옷을 전부 분해하기도 하고 부분적으로 뜯어서 재단을 한 후 다시 재봉하는데, 무엇보다 유행에 맞춰서 자연스럽게 리듬을 살려 고객의 만족도를 높여준다"

 

김완규씨(43·전주 인후동)는 "아내가 동네 수선가게를 잘 이용한다. 오래된 신사복 바지나 소맷부리가 닳은 것은 표 안 나게 덧대고, 바지통이 넓은 것은 줄이고, 체형의 변화에 맞게 허리 사이즈나 길이를 고쳐 입기도 한다. 내 몸에 익숙한 옷이라서 좋고, 몸에 딱 맞아서 착용감이 더욱 좋다"고 말했다.

 

양순자씨(65·전주 우아동·가명)는 30년부터 10년 전에 비싸게 구입했던 옷가지들이 장롱 속에 빼곡하게 걸려 있다. 가을에 장롱 문을 열어보며, 죽고 나면 어차피 자식들이 모두 버릴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 짐을 덜어주기 위해 옷장정리를 하다가 너무 아까워서 수선 집에 들고 갔더니 새 옷처럼 맘에 꼭 맞게 고쳐주었다. 그 옷을 입고 노인복지관에 가니 친구들이 새 옷 샀느냐며 한 턱 내라고 하여 기분이 좋았다. 그에 자신감을 얻어 "요즘 리폼의 매력에 쏙 빠져 옛 추억을 떠올리며 매일 새 옷을 입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말했다.

 

옷 잘 고치기로 소문난 '예쁘니 수선집'을 운영하고 있는 최효순씨는(47·전주 인후동) 집안 형편이 어려워 고등학교를 다니다 말고 18살 때부터 바느질을 배웠다. 의상실에서 보조로 일하며 한 달 동안 하루에 오백 원씩 받기도 하고, 그 다음 달은 천 원을 받으며 기술을 배웠다. 결혼 후에는 직장생활을 잠깐 했지만, 아이들 양육문제도 만만치 않아서 그만 뒀다. 그 후 YWCA에서 5개월 동안 다시 양재를 배워 8년 전에 조그만 수선가게를 차렸다.

 

그는 "요즘 날씨가 추워져서 겨울 코트나 털 달린 옷들이 많이 들어온다"며 어릴 때부터 배운 바느질이라 자신만의 노하우로 고객을 대한다고 했다. 그의 손에 닿는 청바지는 버릴 게 하나도 없다. 짧은 바지나 미니스커트, 가방 등 다양한 소품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불황을 헤쳐 나가기 위해 수선 일을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그는 "수선가게는 돈이 많이 들지 않고, 기술과 감각만 있으면 평생 직업이 될 수 있다"며 불황기에 주부들에게 자유로운 직업에 도전해 보길 적극 추천한다.

 

솜씨 좋은 주부들은 온라인 쇼핑몰에서 미니 재봉틀을 구입하여 바지, 치마 밑단을 줄이는 것부터 웬만한 것은 직접 집에서 고쳐 입기도 한다. 고유가와 물가급등 시대에 리폼은 가정경제에 도움을 줄 뿐 아니라 에너지 절약에 환경오염까지 막고, 거기다 헌 옷에 새 날개까지 달아주니 1석 4조의 효과를 볼 수 있다. 입을 옷이 없다고 불평하기 전에 지금 당장 장롱 속을 꼼꼼히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

 

/박예분(여성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