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만한 영화] 눈을 버린…희망을 잃은…진실을 등진…

원작 소설에 충실한 '눈 먼 자들의 도시'

'머리카락 뽑는 것 보다 안 아프다'는 주위 사람들의 유혹에 넘어가 라식 수술을 했던 때가 생각난다. 다행스럽게도 수술은 사람들 말처럼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하지만 눈앞에서 왔다 갔다 하는 온갖 수술 기구들과 너무나 또렷한 맨 정신이 문제. 보통 다른 수술들은 마취를 하거나 눈을 감은 상태에서 진행되니 수술 광경을 볼 수 없지만 라식의 경우는 다르다. 아플 때나 무서울 때 눈을 질끈 감으며 그 두려움을 참아내는 걸 생각한다면 눈앞에 돌아다니는 수술 도구들이 얼마나 끔찍했을지 상상이 될 것.

 

여기 눈이 먼 인간들 사이에 눈이 멀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 있다. 줄어가는 식량과 인간들 사이의 욕심, 쟁탈, 본성만이 존재하는 곳. 이 모든 상황을 혼자서만 지켜 볼 수 있고 해결해야 하는 사람. 눈 한번 감을 순간도 없이 자신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내야 하는 한 사람이 패닉 상태의 도시 중심에 있다. 영화 '눈 먼 자들의 도시'(이하 도시).

 

120분간 그들의 도시를 보고 있노라면 보고도 믿고 싶지 않은 인간의 추악함에 두 눈을 질끈 감고 말 것이다.

 

 

▲ 보이는 자에게 더 잔인한 곳

 

영화는 평범한 어느 날 오후 도로 한 가운데 차를 세운 한 남자로부터 시작된다. 차를 세웠던 남자도, 그를 데려다 준 사람도, 아내도, 그가 들른 병원과 의사까지 모두 눈이 멀어버리게 된 것. 시야가 뿌옇게 흐려져 앞이 보이지 않은 이 기이한 병은 몇 명으로부터 시작해 어느새 도시 전체를 덮어버린다. 급기야 정부는 이들을 격리수용하기로 결정하고 앞을 못 보는 자들을 한 곳에 가두게 된다. 하지만 이곳에 남편(마크 러팔로)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눈이 먼 척한 아내(줄리안 무어)가 있다. 눈 먼 사람들을 모아놓은 병동 안은 보이는 자에게 더 잔인한 참혹한 곳. 사회 전체를 축소 시켜 놓은 듯한 인간의 여러 본성들이 등골이 오싹할 만큼 현실적이면서 잔인하다. 눈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다른 감각에 의존한 인간들의 모습은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올 것.

 

어느 순간 아무 이유도 없이 우리의 눈이 다 멀어 버린다면? 과연 영화 같은 모습일까 상상을 하다가도 결국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것이 이 영화의 무서움이다.

 

▲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이야기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적도 있는 주제 사라마구의 1995년 작품. 자신의 작품이 오역되는 것을 막기 위해 도시의 영화화를 거절하던 노작가는 결국 페르난도 메이렐레 감독에게 작품을 맡겼다. 작가 뿐 아니라 소설을 영화로 만들어 성공한 케이스가 얼마 안 된다는 것을 떠올린다면 많은 원작 팬들은 도시의 영화화를 걱정했을 것이다. 영화로 만들기에는 너무 많은 내용과 상상력이 집약돼 있기 때문. 실제로 영화를 보고 난 후 책을 읽게 되면 뭔지 모를 실망감을 느끼게 된다. 결론적으로 영화로 만들어진 도시는 꽤 괜찮은 편. 잔가지들을 잘 쳐내 원작에서 얘기하려던 '목적'에 가깝다는 평을 받고 있다. 다만 다른 모든 원작 소설을 가진 영화들이 그렇듯(특히 공상물의 경우) 크고 방대한 이야기가 한가지로 집중돼 아쉽지만 그것은 영화라는 매개 자체가 가진 흠이다.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 「눈 먼 자들의 도시」는 3부작으로 「눈 뜬 자들의 도시」 「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가 있다. 언젠가는 나머지 두 작품도 영화로 만날 수 있을지 기대해 봐도 좋지 않을까.

 

원작이 던지는 메시지에 힘을 실은 배우들에 대해서도 빠뜨릴 수 없다. 모두 눈 먼 세계에서 홀로 볼 수 있는 아내 역할의 줄리언 무어는 영화가 거의 흰 톤인 것을 감안해 자신의 빨간 머리를 버리고 금발로 염색했다. 절망하거나 쓰러지지 않는 그녀의 연기는 관객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 외에도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눈 먼' 사람들은 실제 눈이 보이지 않는 연기 코치를 받았다고 한다. 촬영할 때는 흰 렌즈를 착용하고 임했으니 보이지 않는 고통이 스크린으로 전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