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단체, 주민과 소통하다] ③소통으로 도시 가꾸다-부산 광복로

주민들 손으로 거리에 예술을 입히다

주민들이 직접 디자인을 고안해 만든 조형물(위)과 가로등. (desk@jjan.kr)

부산 광복로의 가로경관개선 사업은 국내에서 대표적인 공공디자인 성공사례로 꼽힌다. 그리고 광복로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공공디자인 사업을 계획하고 있는 많은 자치단체들은 부산을 방문하고 있다.

 

이에 광복로의 상인 및 주민들은 "화려한 겉 모습만 보지 말고, 안을 들여다 보라"고 조언한다. 이들은 광복로 프로젝트가 거둔 진정한 성과에 대해 '깨끗하게 정비된 가로환경이 아니라,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보여줬던 행정기관과 전문가, 그리고 주민들의 열정'이라고 설명했다.

 

▲ 주민에 의한 의사결정

 

부산 광복로 가로경관개선사업의 출발은 여느 자치단체의 가로조성사업과 크게 다르지 않다.

 

광복로 가로경관개선사업은 1990년대 중반들어 부산시청을 비롯해 공공기관의 잇단 이전으로 쇠퇴일로를 걷기 시작한 광복로를 회복시키기 위한 사업으로, 출발점은 간판개선이었다. 광복로는 지난 2004년 정부의 간판개선시범지역으로 선정되면서 시작됐고, 국비 30억원을 포함해 총 87억여원이 투입됐다.

 

그러나 광복로가 여타 사례와 다른 점은 주민과의 소통이었다. 행정은 사업계획단계에서부터 모든 간섭이나 규제를 자제했다.

 

당시 부산 중구청장은 광복로 사업과 관련된 모든 의사결정 권한을 민간에게 넘겼다. 전문가(7명)와 공무원(3명), 그리고 주민(3명)으로 구성된 '시범가로추진위'를 심의의결기구로 격상시키고, 추진위가 모든 주요 의사를 결정토록 했다. 구청은 의결사안에 대한 행정적 지원만을 담당했다.

 

사업계획에서부터 시공에 이르기까지 행정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운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 것으로, 이는 광복로가 성공사례로 꼽히는 밑거름이 됐다.

 

부산 중구청의 담당 공무원은 "모든 의사결정 권한을 민간에게 넘긴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결정이었다"면서 "행정은 주민들의 창의력을 따라가지 못하고, 주민들에 의해 만들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주된 요인이 됐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 지루하고 기나긴 여정

 

모든 권한이 민간인에게 넘겨졌지만,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전문가를 제외하고 주민들의 공공디자인에 대한 개념조차 정립되지 않은터라 회의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여기에 간판에 대한 주민들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면서 매사에 충돌했다. 당연히 회의는 길어지고, 반복될 수 밖에 없었다.

 

지난 2005년 4월 제1차 회의가 개최된 이래 2007년 8월경 추진위가 해산되기까지 무려 44차례나 회의가 개최된 이유이기도 하다.

 

사업에 참여했던 주민 김태곤씨는 "주민과 공무원, 그리고 전문가 모두가 사업을 함께 해 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면서 "이같은 상황속에서 공공디자인에서 주민의 역할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도 적지 않았다"며 사업초기의 어려움을 설명했다.

 

당시 추진위원장을 맡았던 우신구 부산대 교수는 "사업초기에 방관자이던 주민들이 점차 사업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등 주민의 역할이 변화됐다"면서 "이런 점 등을 볼때 공공디자인은 가로의 물리적인 형태를 디자인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거리를 주인이 되어 함께 만들어가고 발전시켜 갈수 있도록 '사람의 마음을 디자인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 주민역량 회복

 

회의가 진행될수록 흩어졌던 주민들의 의견이 점차 모아지기 시작했고, 소모적인 논쟁만 벌어졌던 회의도 속도가 붙었다. 이런 가운데 간판문화개선사업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의견이 개진됐다. 간판 뿐만 아니라 도로포장이나 간판이나 건물의 파사드를 통합적으로 개선하자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간판개선 사업으로 출발됐던 프로젝트는 토털디자인 사업으로 확대된 배경이다.

 

또한 주민들은 간판 디자인이나 가로등의 생상 및 바닥 포장의 디자인 등에 이르까지 모든 사항들을 전문가들과의 토론을 거쳐 결정했다.

 

부산 중구청의 이천호 담당은 "다소 지리한 논쟁으로 초기공사가 지연됐지만, 이후 속도가 붙으면서 후반공사는 빨리 진행되면서 실제 공사가 지연된 기간은 3개월에 불과했다"면서 "오히려 잠재된 갈등요소들이 해소되어 훨씬 순조롭게 진행됐다"고 평가했다.

 

이후 주민들은 사후관리를 위해 2007년 7월 문광부·부산광역시 및 중구청 등과 함께 공동협약을 체결했다. 업소당 간판 총수량 및 업소별·형태별 설치 등을 주민자율로 규제해 나갔다. 이는 광복로의 간판이 관리나 규제가 아닌 주민협약에 의해 자율적으로 개선하는 시스템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대목이다. 더불어 주민들은 이 사업을 계기로 광복로 문화포럼을 결성해 다양한 문화축제를 개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