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로 그림책의 선과 색 표현은 사실적이고 정형적인 방법으로 다뤄진다. 하늘은 파랗고, 나무는 초록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런 정형화된 그림책을 벗어난 흑과 백의 조화를 통해 무한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책이 「또 다시 숲 속으로」 (한림출판사)라는 그림책이다.
조각한 고무판화를 찍어낸 듯한 그림은 흑백이라는 색을 통해 아이들에게 알록달록한 색 대신 자신만이 생각하는 색으로 덧입혀 상상할 수 있는 풍부한 여지를 주며 숲 속의 세계로 빠져들게 만든다.
아이들이 좋아 할 동물들을 소재로 한 점이나 쉽고 단순한 문장들이 반복돼 쉽게 책에 다가설 수 있게 해준다. 주인공 '나'는 깊이도 알 수 없고, 길도 보이지 않는 숲 속으로 들어간다. 숲 속에서 동물들의 장기자랑 순서를 호명해준다. 기린은 긴 목을 이용해서, 원숭이는 긴 꼬리를 이용해서 , 동물들은 자신들의 특성들을 살린 장기자랑을 보여준다.
차례대로 둘러앉은 동물들을 호명하다 보면 그림 속에 앉아 있는 동물들과 일치가 되어 다음엔 누굴까 하면서 시선이 그림에 머문다. 언어 감각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도록 반복적인 문장은 듣는 아이들의 귀를 즐겁게 해 준다. 중간쯤 그림을 따라가다 보면 둘러앉은 순서대로 동물들이 호명되지 않는다. 호명되지 않는 동물이 언제쯤 불러지게 될지 기대감을 갖게 하는 맛도 있다.
동물들의 장기자랑이 거의 끝나가고 마지막으로 주인공 아이가 웃으면서 물구나무를 섰을 때 모든 동물들이 깜짝 놀란다. 주인공은 장기자랑의 일등이 된다. 다른 동물들이 할 수 없고 오직 아이만이 할 수 있었던 재주는 무엇이었을까? 거의 무표정에 가까웠던 주인공 아이가 고개를 젖혀가면서까지 사랑스럽게 웃는 모습에서 아이의 특별한 능력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자칫 흑백그림은 칙칙하고 생기 없는 그림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흑백 이미지만큼 사람들의 기억에 강하게 호소하는 강력한 힘이 없는 것 같다. 흑백이 만나 부드러운 선과 색을 표현하고 있으며, 다채로운 색보다도 숲 속의 모습도 동물들의 모습도 풍부하고 깊이 있게 보여준다. 책장을 넘겨보면 어느 하나 똑같은 동물들의 표정을 찾을 수 없다.
이 책은 다양한 볼거리가 넘쳐나는 그래서 아이들의 눈을 피곤하고 지치게 하는 이 때에 깊이 있고 상상력을 자극해 주는 좋은 책이 아닐까 싶다.
/정세정(전주시립금암도서관 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