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칼럼] 백혈병 소년의 아름다운 소원 - 안홍엽

안홍엽(수필가·필애드 대표)

천지에 죽은 낙엽만 뒹구는 11월은 어쩐지 잊혀 진 본능처럼 죽음을 생각하기에 걸맞은 때인지도 모른다. 10월의 자지러질듯 화려한 세상, 다가오는 새해와 함께 스러졌던 희망이 다시 생기는 12월, 그 사이에 끼여 신음하는 11월은 만물에게 절망의 늪일 수밖에 없다.

 

그 11월, 지구 저쪽에서 날라 온 열한 살 소년의 갸륵한 얘기는 우리에게 감동적인 한편의 시요 천상의 아름다운 소리와도 같았다. "어머니 죽음이 두렵지 않아요. 지금은 죽음을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배고픈 노숙자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싶어요." 병원에서 돌아온 길, 추위에 떨고 있는 늙은 노숙자를 보고 뇌까리는 소년의 말이었다. 그러나 브래드군은 어머니가 노숙자들을 위해 마련한 잔치가 끝나기도 전에 환한 미소를 남기고 열한 살 짧은 일생을 마감했다. 이 소식이 전해진 미국의 씨애틀에서는 당장 트럭 여섯 대 분의 음식과 6만 달러의 성금이 모아졌다. 브래드군은 2주간의 남은 시간을 불우이웃 돕기에 쓴 셈이다. 사형집행까지 남은 시간 5분을 옆 사람과 마지막 인사, 자신의 삶 돌아보기, 그리고 자연을 둘러보는데 썼던 도스토예프스키에 비해서도 시간의 소중함과 가치를 훨씬 더 드높인 셈이다. 꺼져가는 생명에 집착하지 않고 불우 이웃에 대한 끝없는 사랑을 실천했기 때문이다.

 

도스토옙스키는 "선과 악의 투쟁은 사랑하려는 힘과 사랑하지 못하는 힘의 대결"이라고 했다. 우리 사회는 지금 사랑하지 못하는 힘에 편들거나 억눌리고 있다. 노블리스 오브리제도 화려한 논리에 지나지 않는 말잔치로 전락하고 있다. 그러나 논리 보다는 사랑이 먼저다. 사랑은 반드시 논리보다 앞서야 한다. 국민여동생 문근영의 몸에 익힌 사랑도 이상한 논리에 짓밟힐 번했지만 괘념치 않겠다는 다부짐으로 사랑의 위대함을 실증해 보였다. 해마다 12월이면 몰래 돈뭉치를 동사무소에 갖다 놓고 살아진 사람은 누구인지도 모른다. 그런가 하면 선행을 홍보하는데 열을 올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사랑의 열매를 액세서리로 꽂고 다니는데 만족하는 이웃사랑도 넘쳐 나는 12월이다. 동전 세 닢을 바친 여인을 크게 칭찬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기억해야한다. 급식비를 내지 못하여 점심을 굶어야 하는 결식아동이 많다는 사실은 남의나라 얘기가 아니다. 12월이 되면 사랑의 연례행사들이 봇물을 이루게 된다. 왜 하필 12월일까? 꼬깃꼬깃 가슴에 쌓아 두었던 사랑의 힘이 한꺼번에 분출되는 거라고 가정해 두자. 그러나 사랑은 생명 이전의 것이고 죽음이후의 것이라고 했다. 이 세상이 창조되기 전 이미 사랑은 존재했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사랑은 시간도 공간도 없음을 일러주고 있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 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 말씀을 경건하게 묵상해야 할 개념들이다.

 

희망과 절망이 교차 되는 12월, 내게 남은 시간은 얼마일까. 앞으로 12월을 몇 번이나 더 맞이할 수 있을까. 한 가지 분명한건 사랑 없는 지옥에서 속절없이 지내기에는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너무 짧다는 것이다. 비록 2주일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사랑이라는 영원한 가치를 실천이라는 선물로 남기고 간 11살 브래드군의 명복을 빈다. 지구촌을 달군 이 훈훈한 사랑의 이야기가 바로 우리 옆에 등장할 자선냄비에 가득 찬 세모가 되었으면 좋겠다.

 

/안홍엽(수필가·필애드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