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없이는 살아도 식품 없이는 못 산다'
일본에서 식품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머리에 올리는 구호다.
일본 농림수산성은 지난 2005년 농정개혁 5개년 계획을 수립하면서 '식료산업의 국제경쟁력 향상'을 그 목표의 하나로 삼아 식품산업 발전에 대한 의지를 분명히 했다. 우리 정부도 최근 2012년까지 식품시장 규모를 2배 이상 키우겠다는 목표를 내놓았다.
정부의 식품산업 육성에 대한 목표와 의지는 두 나라가 비슷하지만, 구체적 실천 과정에서는 차이가 많은 것 같다. 중앙 및 지방정부가 식품산업 육성을 위한 사업들을 주도하는 반면, 일본에서는 식품 관련 민간 혹은 공공 형태의 단체와 기구가 정부의 정책을 수행하고 있다.
농림수산성의 핵심 정책임에도 정부가 직접 진두지휘하지 않고 식품 관련 단체 등을 내세울 수 있는 배경에는 관련 연구기관이나 협회 등의 조직이 탄탄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직접 지원하는 연구소, 기업 회원들로 구성된 기업연구소 모임, 연구소와 기업을 망라하는 사단법인·재단법인들이 즐비하다. 식품관련 사단·재단법인만 80여개에 이른다.
이들 단체들의 활동은 중복되는 경우도 있지만, 정부 사업과 관련해 공모를 통해 사업을 따기도 하고, 단체들이 힘을 합쳐 정부 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하기도 한다.
▲ 일본 식품연구의 중심지 식품종합연구소
일본의 식품 관련 대표적 연구기관인 식품종합연구소를 보면 일본의 식품산업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 수 있다. 우리의 식품연구원(구 식품개발연구원)과 비슷한 기능을 갖고 있는 이 연구소는 독립행정법인으로 되어 있다. 도쿄 인근 이바라키 현 츠쿠바시 외곽에 자리잡은 연구소는 연구 본관을 비롯, 각종 실험실을 포함해 16개 건물을 갖고 있다.
국립 식료연구단지라고 할 이곳에는 식품종합연구소 외에도 중앙농업종합연구소(우리의 농업진흥청), 농업환경기술연구소, 삼림종합연구소, 농촌공학연구소, 농업자대학교 등이 이웃하고 있다.
74년 역사를 자랑하는 식품종합연구소(미곡이용연구소로 1934년 출발)가 지금의 독립행정법인으로 바뀐 것은 지난 2001년. 현재 96명의 상근 연구원이 있으며, 일반직 25명, 계약직 150명, 연수생 136명, 포스트 닥터 33명 등으로 구성돼 있다.
연구분야는 식품기능, 안전, 분석, 소재료학, 식품공학, 미생물이용연, 식품폐기물 자원활용 등 7개 영역으로 나누어져 있고, 영역별 또다시 유티트 단위로 세분화 돼 있다.
연구소의 주된 역할은 물론 식품연구에 있지만, 여기에 그치지 않고 연수생 교육이나 강습회, 국제협력 등의 대외 활동도 활발하다. 도쿄대학 등 여러 대학과 연계를 맺고 있으며, 우리의 한국식품개발원 및 중국 농업과학원 등과 교류하고 있다. 민간기업 70개사와 10여개 식품협회장 들이 참여하는 식품연구소장회의나, 농식품 관련 독립연구기관과도 종횡으로 연결돼 있다.
연구비는 연간 15억엔 정도며, 기본 운영비만 정부에서 지원하고(2억8천만엔) 나머지는 수탁 연구비를 받아 운영한다. 지난해 77건의 공동연구 과제중 80% 정도인 60건이 민간기업과 함께 한 연구였으며, 다른 독립법인과의 공동연구가 9건, 대학과 6건, 공립시험장과 2건 등이었다.
연구소측은 최근의 연구성과로 쌀의 품종판별과 산지를 판별한 연구, 유전자 변환 농산물(GMO)의 인증표준화물제 생산 등을 자랑하고 있다. 연구소에서 개발한 식품의 특허 취득을 보면, 해외 특허 96건과 국내 180건을 보유하고 있다. 특허 보유 건수가 매년 줄어드는 이유가 인상적이었다. 연구소 토루 하야시 소장은 "쓸 데 없는 특허를 보유해 관리비만 나가게 하는 것 보다 직접 사업과 연계시킬 수 있는 부분의 특허만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허를 과시용이 아닌, 실용적인 측면에서 이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본 연구소의 한 특징을 보여줬다.
▲ 재단법인 식품산업연구센터, 기업과 단체 연결고리
식품종합연구소가 일본 식품연구를 주도한다면, 재단법인 식품산업연구센터는 연구기관이나 식품기업들을 연결시키는 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 식품업계가 업종별로 다양하고 업계를 대표하는 단체들이 개별적으로 움직이는 상황에서 횡적 연계나 중심부가 필요하다는 업계 및 단체의 요구로 지난 1970년 센터가 발족됐다.
센터에는 개별 식품기업(166개)을 비롯, 업종별 단체(124개), 도도부현(3개), 지방식품산업협의회(27개) 등 400 회원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센터가 맡고 있는 주된 일은 식품업체들이 필요로 하는 정보 수집과 정보교류. 특히 일본 정부가 추진하는 동아시아식품사업 활성화 전략에 따라 센터의 정보제공 역할이 아주 중요해졌다. 식품기업들의 해외 진출이나 수출 등에 필요한 현지 정보 수집에 해외에 진출해 있는 일본 기업들로부터 빠르게 정보를 받을 수 있는 곳이 식품산업센터기 때문이다. 센터의 또다른 중요 역할이 식품 관련 교육이다. 식품의 품질관리나 안전성 확보, 가공식품 표시의 적정성, 식품의 국제규격, 환경 관련 문제, 불공정 거래 관행, 기업과 소비자간 의사소통, 이업종과 연계 문제 등에 이르기까지 교육과 지도, 조사 업무를 하고 있다. 지방식품산업협의회 활동을 지원하고, 기업연구소장 회의를 이곳에서 주재한다. 센터는 5년에 1번씩 식품기업 실태조사를 벌여 기업들이 활용토록 하고 있기도 하다.
취재진이 찾은 지난 18일에도 중국 광주에 진출하려는 일본의 식품기업 관계자들이 이곳에서 연수를 받고 있었다.
이 같은 일을 담당하는 센터의 인원은 40명. 그중 30%가 회원사에서 파견된 인력이며, 나머지 공무원 출신과 전문직 등이 일하고 있다.
재단 규조 사이토 이사장은 "식품의 특성상 업종별 협회와 연구소, 분야별 각 단체들에게 정부 정책을 전달하고 그들의 현장 의견을 개별적으로 수렴하려면 많은 시간과 예산이 든다"며, 이를 대표하고 집약하는 역할을 센터에서 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