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그 권위만은 대단했다. 비가 오는 날이면 교과서를 살리기 위해 가방을 품에 안고 뛰었고, 집에 와서는 인두며 숯불 다리미까지 동원하기도 했다. 공부안하는 아들에게 아버지가 전하는 '공부 안하려면 교과서 갖다 버려라'는 한마디를 들으면서 인생의 앞길이 꽉 막히는 암담함을 느끼기도 했다.
국어사전을 보면 교과서에는 '학교 교육과정에 따라 주된 교재로 사용하기 위하여 편찬한 책'이라는 뜻 이외에도 '해당 분야에서 모범이 될 만한 사실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되어 있다. 옛날의 교과서는 그랬다. 개인의 감정이나 이해, 시각이 개입된다는 것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교과서에 나와 있는 내용은 무조건 맞는 말이고, 감히 누구도 의심하거나 도전하지 않았다.
오늘날에는 다르다. 시대의 변화와 함께 화려하고 멋진 겉모습을 갖게 됐지만 그 내용에 대한 권위는 김칫국물에 찌든 회푸대 교과서보다 못한 것 같다. 정권이 바뀌면 도전받고 흔들리기 때문이다.
물론 시대가 변하면 사물을 보는 관점이나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 60, 70년대나 80년대 교과서로 요즘 아이들을 가르칠 수는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문제제기와 논의절차가 정당하냐는 것이다.
요즘의 개편논의는 이명박 정부에 의해 시작됐다. 정부가 검인정 교과서들을 좌편향으로 규정하고 50여 곳을 수정하라고 하면서 비롯됐다. 문제 제기에서부터 정부의 정치적인 시각이 개입된 것이다. 논의과정도 그렇다. 역사학자들의 다양하고 자유로운 의견개진 속에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맥을 잡아가기 보다는 정부의 강압에 의해 출판사가 굴복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정 성향의 인사들을 대거 동원, 일선 학교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현대사 특강'이라는 퍼포먼스를 벌이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물론 좌편향의 문제가 있다면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정부가 나설 일은 아닌 것 같다. 퍼포먼스로 될 일도 아니다. 역사학자들이 연구하고 논의해야 할 일이다. 치열한 논의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의견이 하나로 모아지지 않는다면 굳이 강요하지도 말자. 다양성을 인정하자. 현재의 교과서가 좌편향이라면, 공정한 새 교과서를 만들어내면 된다. 우편향이 아니라 좌우의 시각을 함께 담아내는 그런 교과서 말이다. 그런 연후에 국민의 평가를 받으면 된다.
우리나라는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으로 많은 고통을 겪어왔다. 이 땅에서 우리의 현대교과서를 놓고 또다시 논란이 벌어지는 것은 슬픈 일이다. 아직 성숙되지 않은 여린 학생들이 좌편향, 우편향에 더이상 흔들려서는 안된다.
/이성원(교육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