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전을 관리하기 위하여 선발된 관원들은, 경기전의 관리 전반을 책임지는 전직(殿直)으로 임용된 경기전령(慶基殿令)과 경기전 참봉(參奉)을 비롯하여, 청소 등을 담당하는 수복(守僕), 소방업무를 맡은 금화(禁火) 및 수호(守護)를 위한 충의(忠義) 등이 있었다. 이외에도 수문장(守門將)이 배치되어 있었으나 1896년 전주부 순검(巡檢)이 담당하게 되었다. 1899년 이후 관찰사가 제조(提調)의 직임을 겸하게 되었고, 1900년 궁내부 관제 개편으로 경기전에는 제조 1인(관찰사가 겸무), 위장(衛將) 1인(전주 진위대 대장 겸무) 등이 증설되었다. 일제시대 조경묘와 경기전을 관리하는 실질적인 인원은 총 책임을 맡은 전사보(典祀補)와 제감(祭監) 1인, 수복(守僕) 2인, 방직(房直) 1인, 숙수(熟手) 1인, 군사(軍士) 2인 등 총 7명이었으며, 조경묘와 경기전의 관리 조직체계가 동일하였다.
경기전과 조경묘의 관리를 담당했던 사람들의 가장 큰 임무 중의 하나는 매일 매일 경기전과 조경묘를 살피는 일이었다. 어디에 훼손된 곳이 없는 지를 살펴 기록하고, 필요시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또한 경기전을 방문한 사람들을 안내하는 것 역시 중요한 업무였다. 관리(업무)일지는 1913년부터 1944년까지 작성된 「일지」 6책이 현존한다.
일지의 기재방식은 일자(舊曆을 함께 표기)와 날씨를 기록한 뒤 처리 업무별로 1~2행으로 간단하게 정리하고 있다. 1913년 8월 29일자를 보면 "이 날은 합방기념일인 까닭에 일절 사무를 폐지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조경묘ㆍ경기전 관련 업무에 대한 처리상황을 기록하는데, 그 업무는 통상사무와 제향사무로 구분하여 파악할 수 있다.
통상사무는 직원들의 근무실태 및 회계ㆍ서무 등에 관한 것이며 제향사무는 묘(廟)ㆍ전(殿)의 청소 및 제의(祭儀)에 대한 업무들이며, 일지의 작성자는 전사보로 생각된다. 1913년의 일지에는 작성자가 쓰여 있지 않지만 1914년 이후에는 일일 업무를 기재한 뒤 '전사보 이기신'이라 쓴 뒤 날인하고 있다. 일지를 직접 썼는지의 여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일지의 책임은 전사보에 두어져 있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1924년 이후의 일자 다음에 요일을 병기하고 날씨를 기록한 뒤 음력을 써 넣었다. 관리일기 기재방식이 간단하게 정리되었다. 예를 들어 일상적으로 추진하는 업무의 경우 '조경교와 경기전을 아침 저녁에 봉심(廟殿朝夕奉審)하다'라는 등의 단구로 통일하여 기입하고 있는 것이다. 5일마다 행하는 5일봉심의 경우 초하루, 보름날(朔望日)과 중복될 경우 삭망제로 대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925년부터는 매일 행하는 업무에 대해서는 매일 1일만 기재하고 나머지 일자에는 기입하지 않는 등 단순해져 가고 있다.
1935년부터 일지의 기재방식이 달라지고 있다. 먼저 인쇄된 광곽선의 윗선 여백에 음력일자를 기입하고, 인쇄된 기록면에 일자, 날씨를 기재한 뒤, 추진 업무에 대한 키워드를 쓰고 그에 이어서 업무내용을 간단하게 기재하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추진 업무에 대한 주제어분류는 대체로, 당직(當直), 다례(茶禮), 순회(巡回), 제기(祭器), 수정(修正), 공문발송(公文發送)ㆍ접수(接受), 관보전보(官報電報), 소제(掃除), 차관참배(次官參拜), 절식(切植), 식재(植栽), 봉급수령(俸給收領), 분향(焚香) 등 다양하게 나타난다.
/홍성덕(전북대박물관 학예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