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옛날 우리가 생필품조차 모자랐던 시절에는 무엇이든 생산하는 것만이 선(善)이고 그것만이 국가경제에 이바지하는 것이었다. 가난했기 때문에 대다수 국민의 가장 큰 구매조건은 상품가격이었고, 가내공업수준의 생필품부터 산업용 기자재까지 내구성이라는 것은 전혀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대중이 사용하는 주방용품에는 찌그러지기 쉬운 양은제품이 많았고, 취사와 난방용으로 전 국민이 애용하던 연탄보일러는 두해를 넘기기 어려웠다.
수출입국을 외쳤던 시절 산업화의 문턱에서 우리의 젊은 누나들이 밤새워 만든 한국산 와이셔츠는 70년대 중 후반까지 미국 시어스 백화점 홀 안의 둥근 테이블 위에 수북이 쌓여있었고 그 한가운데에 세워진 푯말에는 슬프게도 <싸요! 단돈 $o,oo> 라고 쓰여 있었다. 싸요!>
품질이 좋은 것은 외국산이고 당연히 값이 비쌌다. 1차, 2차 산업이 주류를 이루는 이 시절에는 사람조차 짐짝취급 당하며 버스에 매달려 다녔으니 이 상황에서는 서비스라는 말 자체가 사치였고 그야말로 관광 레저산업 같은 것은 국민의 건전한 정신을 좀먹는 업종으로 취급받았다.
산업화에 따른 기술과 자본시장의 발달로 절대적 빈곤은 사라지면서 산업구조의 재편에 따른 인구와 일자리의 이동이 뒤따랐고, 뒤이어 세계시장에 어깨를 겨루는 기업들도 생기게 되었다. 그리고 부자들도 생겨났다.
오늘 필자는 소위 부자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지난 정권, 우리는 많은 정책을 실험하였고 그 중심에는 부자에 대한 정책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은 가진 자와 없는 자의 갈등을 낳았고, 이러한 갈등은 멀고도 긴 여정을 지나온 연어가 마지막으로 뛰어 올라서야할 폭포처럼 선진국으로의 진입을 힘들고 어렵게 가로막고 있다.
최근 "고부가가치 상품을 만들어 브렌드화 하자." "관광상품을 만들자." "해양레저산업을 일으켜보자." 같은 말을 자주 듣는다. 그리고 "오늘같이 이렇게 어려울수록 부자들이 지갑을 열어야한다."는 말도 수없이 듣는다.
그런데 우리의 사회를 잘 직시해보면 아직도 기업을 부도덕하게 여기고 부자를 질시하는 모순된 정서가 너무나 깊고 넓게 깔려 있다. 다수의 국민이 아직도 스스로 빈곤층을 자처하고 지지하는 모순을 보이고 있다. 그러면 브랜드화한 상품은 누가 사고 레저산업의 고객은 누가 될 것인가? 이것은 정말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늘 승용차 보급률은 국민4명당 1대이고 고속도로를 달리는 고속버스는 한열에 의자 셋인 우등고속이 대부분이다. 또 호주 같은 나라는 자녀들을 제발 고등학교까지는 마치게 해달라고 학부모에게 애걸을 한다는데 대학 진학률이 84%나 되는 나라는 우리나라 말고 세계 어디에 또 있는가?
이쯤에서 생각을 바꾸어야한다. 산업화가 이루는 물질적 풍요는 그 자체에 한계가 있다. 선진국으로의 진입과 더 나은 풍요를 원하면 먼저 마음의 넉넉함이 선행되지 않고는 어렵다. 우리 서로가 서로를 부자가 되게 밀어주고 가진 자가 스스로 소비의 주체가 되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반세기전 동유럽이 사회주의가 되면서 왜 그토록 처참하게 몰락했으며 자유화 후에는 어떻게 급속히 회복되고 있는 지를 배워야한다. 과거 그들은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있던 일자리를 서로 나누었고 그리고 공멸했다. 필자는 우리나라의 지도자 들이 동구를 여행하는 기회가 있다면 반드시 이미 진출한 한국기업의 현지 경영자들에게 그들이 체험한 것을 들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적어도 국가는 양극화라는 단어를 쓰지 말았어야했다. 이 단어 하나로 우리사회는 가진 자와 없는 자 사이를 적대적 관계로 만들었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일자리가 있는 자와 일자리가 없는 자임을 확실히 알아야한다. 폭포 옆에 계단식 수로를 만들어 더 많은 연어가 상류에 도달하게 하고 더 많은 알을 낳고 부화하게 하여 풍요로운 강과 바다가 되도록 해야 한다.
/육완구(전북자동차부품산업혁신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