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님 소주 한 잔 더하시죠." "벌써 한 병을 비웠는데 이젠 그만하지."
"그러지 말고 한 잔만 더하세요."
이렇게 L선배와 나는 점심에 소주 두 병을 비웠다.
"자네 어제부터 나한테 할 말이 있어서 온 것 같은데 무슨 이야기인데 그래?"
"예... 실은 이번에 명예퇴직을 통한 구조조정이 있는데요..."
"그래? 내가 나이를 먹었다고 해당된다는 것 인가?"
"선배님이 행원으로서 제일 연장자이기 때문에 선배님이 물꼬를 터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1997년 IMF 환란 이후 은행에 불어 닥친 명예퇴직 태풍에 인력개발부장이었던 필자가 지금은 고인이 되신 L선배께 마지못해 꺼낸 이야기다.
세상의 불행은 한꺼번에 밀어닥친다고 했던가. 이 추운 겨울에 10년 전 겪었던 눈물의 구조조정 막이 오르려고 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전체 인원의 10%, 몇 백 명, 몇 천 명 등 신문에 보도되는 공기업들의 구조조정 계획을 보면 마음이 추워져 견딜 수가 없다. 이럴 때 일수록 부둥켜안고 함께 갈 생각은 하지 않고 자꾸 떼어내고 자르고 쳐내려고만 하는지 참으로 잔인하고 무섭다.
직장이라는 곳은 우리네 유교문화권에서는 평생 자기가 몸담고 지내야 할 집이요 삶의 터전이다. 서양문화에서는 자기노동을 제공하고 보수를 받는 곳 일런지 모르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 직장을 옮기는 일은 집을 옮기는 것과 달라 몇 날 며칠 밤을 뒤척이며 한숨을 들이쉬고 내쉬면서 고민해야 할 인생사 가장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하는 문제가 아닌가. 기업을 먼저 살리고 나도 살기 위하여 깎고 줄여야 할 것을 다 챙겨보고 그래도 어려우면 숨만 쉬고 있을 만큼 더 깎아 몸을 붙이고 함께 가는 것이 국가적으로나 기업으로나 개인으로나 다 이익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구조조정을 통하여 기업을 살린다는 근거는 무엇인가. 인건비 물건비 등 비용을 줄이고 비효율적이었던 부분을 개선코자 하는 것이라면 그동안 끊임없는 개선을 통하여 조직을 추스르고 관리했어야 했던 경영진은 무능했던 것 아닌가?
이것이 필자의 잘못된 생각인가?
Y셔츠를 빨아 다림질을 했던 그 때가 행복했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는
어느 은행원 부인의 말이 잊혀지지 않는 것은 구조조정이라는 명분 아래 나이든 선배, B형 간염 등 병력이 있는 동료, 징계 받은 사람, 업적평가 하등급자 등 잘 할 수도 있었던 120여 명 동료들을 내 손으로 잘라야만 했던 10년 전 그 때 일이 지금도 문득 문득 생각나 나를 괴롭힌다.
구조조정을 앞에 두고 행여나 내가 포함되지나 않을까 가슴을 졸이며 두려움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해당기업 직원들에게
「우리 다 같이 짐을 나누어 지고 갑시다」라고 모두 함께 외치십시오.
나는 이렇게 권하고 싶다.
/김용배((사)전북경제살리기도민회의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