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진의 환안제가 열렸을 때이다. 이런 저런 바쁜 일 때문에 환안제의 모습을 직접 볼 기회를 놓쳐서 너무나도 서운했는데, 웬걸 TV보도를 접하면서 서운함은 사라지고 저렇게 하고도 경기전을 잘 관리하겠다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과 함께 분노마저 자리를 잡았다. 경기전에는 1872년 현 어진을 봉안할 때 사용했던 일산, 신여 등의 장엄구들이 정전의 좌우 익랑과 월랑에 노출 전시 보존되어 있다. 많은 전문가와 경기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 점을 지적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음에도, 비가 내리는 환안제에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았기 때문인지 꺼내다 사용하겠다는 발상을 그대로 행동에 옮겨 버린 것이다. 그 사실여부를 확인하지 않은 것은 화면에 보이는 신여 등이 경기전에 모셔진 진품이 아니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과 함구하고 있는 나 자신이 부끄럽기 때문이다.
경기전의 기록들 중에 이러한 물품들을 관리하는 관리 대장이 있다. 물품의 중요도에 따라 일류품수불부와 이류품수불부로 나누어 관리하였다. 이 문서철은 조경묘와 경기전에서 제의(祭儀) 때에 사용하는 물품 관리대장으로 조경묘와 경기전으로 구분되어 각 물품의 수령, 사용, 잔고 등을 기록하고, 적요란에는 잔고 조사일을 기록해 놓고 있어 경기전의 실태를 조망해 볼 수 있다.
조경묘에서 사용한 일류품으로는 신위욕(神位褥)을 포함 총 76종의 물품이 명기되어 있으며, 경기전에는 신탑(神榻) 등 총 129종의 물품이 관리되고 있었다. 표지에 기록된 내용을 보면, 조경묘와 경기전의 설비품, 제향용품, 청내비품의 종류를 살펴보면 총 205종에 달한다. 이들 일류품 관리는 1924년 9월 1일자 잔고를 기준으로 정리되었으며, 관리변동내역이 추가로 기입되어 있으나 그 수는 미미하다. 하한 연도는 목등상(木登床)을 예식과 공문에 의하여 소각한 뒤 기록한 1944년 3월 2일이다. 따라서 해방직후까지 장부상으로는 제의와 관련된 물품들이 보존되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일류품수불부 목록에는 129종이 적혀있지만 실제 장부상에는 134종의 물목이 적혀있다. 이들 물품은 제의과 관련된 각종 주요 물품으로 당가면장(唐家面帳)과 같이 사용연한이 비교적 짧은 피복 소재의 물품들의 경우 소각하고 새로 구입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이류품수불부는 일류품과는 달리 내구성이 길지 않은 소모성 물품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조경묘와 경기전 등에서 관리하고 있던 이류품의 종류 총 70종에 달하고 있다. 이류품 관리는 1924년 8월 말일을 기준으로 작성되었으며, 1936년 3월까지의 관리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물품관리는 단순히 숫자만을 맞추는 것이 아니다. 이런 관리를 통해 물품의 훼손 정도를 파악하고 제의가 있을 때를 철저히 대비하는 방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품 관리의 상황만으로도 우리는 우리 경기전과 조경묘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 지를 파악할 수 있다. 신여를 비롯한 장엄구에 대한 관리일지는 물론 있다. 그렇지만 그 상태를 체크하고 세심하게 관리하는 배려는 없다. 문화재 등록은 우선 순위를 결정하는 것일 뿐 그 가치를 줄세우는 것은 결코 아니다. 국보가 지방문화재보다 더 가치 있다는 것은 아니란 이야기이다. 이유야 어떻든 태조 어진만이 소중한 문화재일 뿐이니 비오는 날 그냥 해도 된다는 그 턱없는 아이디어를 낸 사람들과 허용한 이들 그리고 묵인 방관자들 모두 역사에 죄를 지은 셈이다.
/홍성덕(전북대박물관 학예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