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문득 떠오르는게 김지하 시인의 담시(潭詩) 오적(五賊)이다. 그는 박정희 정권때 재벌·국회의원·고급공무원·장성·장차관등을 다섯 도적으로 비유하면서 부정부패를 통렬히 풍자했다가 옥고를 치른바 있다. 이중 고급공무원에 대한 풍자를 옮겨보자. <셋째 놈이 나온다 고급공무원 이빨 꼴이 가관이다 단것 너무 처먹어서 새까맣게 썩었구나 한 손으로 노탱큐요 다른 손은 탱큐탱큐 되는것도 절대 안돼 안될것도 문제없어 책상위엔 서류뭉치 책상밑엔 지폐뭉치 높은 놈껜 삽살개요 아랫놈껜 사냥개라>셋째>
30여년전 개발독재가 이 땅의 근대화를 촉진시키는 가운데 명(明)보다 더 짙은 암(暗)을 드리우게 했던 공직사회의 부정부패와 비리를 오늘의 상황과 연관지어 매도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그 때나 지금이나 크게 변하지 않은건 공무원사회의 부정비리나 무사안일·복지부동의 여전함이다. 국정의 핵심 축이라 할 테크너크러트들의 무책임 무소신 풍조는 '영혼을 팔았다'는 눈물겨운 자기 변명마저 그야말로 '변명을 위한 변명'으로 밖에 들리지 않게 하는게 현실이다. 오죽 했으면 대통령이 나서서 '깨진 접시론'까지 들먹일 정도가 됐을까 말이다.
물론 국정의 혼선이나 잘 안 풀리는 경제상황이 오로지 그들만의 책임일수는 없다. 대통령·국회의원·장차관등 지도자들이나 국민 모두가 힘을 합쳐 헤쳐 나가야 할 국가적 과제임을 부인할 수 없다. 다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정부 정책의 수립과 집행에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고 있음을 결코 망각해선 안된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는 것이다. 사실 '깨진 접시론'의 원조는 최병렬 전 서울시장이다. 그는 재직 당시 '접시를 닦다가 깨는것은 용서할수 있지만 깨질까봐 닦지 않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고 공무원들을 다그친바 있다. 미래학자 피터 드러거도 그랬다. '한번도 실책이 없는 사람, 그것도 큰 잘못을 저질러 보지 못한 사람은 승진시키지 말아야 한다'고. 그렇다. 한 손으로는 노탱큐요 다른 손은 탱큐탱큐하는 그런 저질스런 자세대신 이젠 깨질망정 소신과 철학을 가진 그런 고급공무원이 되라.
/김승일(본보 객원논설위원·전북향토문화연구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