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부처의 가르침 화폭에 담아낸 '만가지 꽃이 피고…'展

25일까지 전북대 삼성문화회관

"그림을 그리려면 작가가 조물주가 돼야 하는데, 천수경을 그대로 옮겨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진도가 쉽게 안 나갔습니다. 이렇게 그려도 되나 하는 망설임과 함께 마음에 와닿는 접점이 오질 않았어요."

 

'천수경'을 화폭에 옮겨 담기 위한 고통의 시간이 계속됐다. 잠도 못 잘 정도로 불안한 시간의 연속.

 

마음을 비우니 그제서야 길이 보였다는 화가 임효씨(53). 25일까지 전북대 삼성문화회관에서 열고 있는 그의 전시'만가지 꽃이 피고 만가지 열매 익어'엔 명상 윤회 참회(구원) 등 50여점을 통해 부처의 가르침이 오롯이 담겼다. 한마음선원 설립자인 대행스님의 천수경 한·영문판 「A Thousand Hands Of Compassion」 에 넣은 삽화를 전시로 옮긴 것.

 

깨달음 이전과 이후 세계를 양분화해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전설' 한켠엔 번민과 방황하는 내면을 어두운 솟대로, 다른 한켠엔 밝은 빛으로 자신 안의 부처를 발견한 득도의 경지가 표현됐다.

 

'참회(구원)'에선 오체투지 자세의 사람을 통해 수행하고 있는 작가 자신, 중생들의 모습이 재현됐다.

 

인도 룸비니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흔들거리는 나뭇잎 소리를 들었던 작가의 경험을 토대로 한 '보리수'엔 일상의 깨달음 여정이 그려졌다.

 

그는 그림을 그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리면서 만든다'. 닥나무 재료로 직접 한지를 제작하고, 바닷바람을 쏘인 구리체나무를 원료로 다채로운 색감이 드러나는'갈물기법'을 사용했다. 그의 아버지가 사용했던 어망에 물들이는 기법을 누나가 전수받아 도움을 준 것. '염색해서 만든 종이 자체가 절반의 완성을 가져다 준다'는 그의 고집이 반영됐다.

 

15년 전 한지작업을 시작할 즈음 퇴계 이황의 '사단칠정론'을 공부하면서 동양철학을 화폭에 담기 위한 노력을 해왔다. '그림이 돈을 벌기 위한 그림이어서는 안되고, 사람됨의 그릇이 돼야 한다'는 철학이 담긴 이번 전시는 그의 깊이와 품격이 갖춰진 결정판. 박하향의 여운이 오래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