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어머니는 투박한 뚝배기 같은 분이셨다. 평생을 머슴처럼 일하며 오로지 자식만을 위하여 사셨다. 여자로서의 삶은 물론이거니와 친구 사귀는 일도, 친적집과 이웃에 놀러가는 일도 없으셨다. 아무런 감정이 없는 듯, 한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적인 욕구마저도 묻어버린 인생이었다.
새벽에 밭으로 나가면 별을 보고서야 집에 들어오는 철인의 여인. 밭고랑 누비며 호미 끝을 달구어 빨간 황토지에서 먹거리를 일궈내셨다. 어머니가 지나간 자리는 금세 깨끗해졌고, 어머니의 손끝에선 필요한 것들이 제꺼덕 만들어지곤 했다.
그리 궁핍한 생활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항상 "배부르다, 나는 안 좋아한다"하시며 당신은 제대로 된 음식 한 번 드시지 않으셨다. 젖가슴 풀어헤치고 우리 팔 남매 비단 명주실 가없이 풀어주시던 어머니. 평생 손톱 한 번 깎아 보지 못했던 팔순 노모는 아직도 빈 가슴 자식들에게 물리려하나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이제는 번데기처럼 주름진 육신에 죽음의 고비 고비를 넘기고 계신다. 복사꽃 밑에서 눈물짓던 설움도, 옹이처럼 굳어진 모진 세월의 회한도, 삶의 의욕도 다 놓아버리시고 1월에 저승으로 떠나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그리며 곁에 가시기만을 되뇌이신다. 교통사고에 뇌수술까지 그것도 모자라 투석실에서 피를 걸러내야만 하루하루 삶의 끈을 이어나갈 수 있는 내 어머니. 오늘도 집 앞 호숫가를 걸으며 나는 어머니를 본다.
/이정숙(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