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의 대표적인 공연장인 한국소리문화의전당에서는 올해 공연 횟수의 40%를 서양음악이 차지했다. 국악 20%, 대중음악 14%, 연극 13% 등이 그 뒤를 잇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전북지역 음악인들은 전통음악에 치여 정책적으로 소외당하고 있다고 말한다.
올 한 해 서양음악 분야에서는 오페라의 약진이 눈에 띄었다. 전문 단체들이 지역적 소재로 제작한 창작오페라 뿐만 아니라 대학 오페라, 소극장용 오페라 등 오페라의 종류도 다양했다.
서양음악 결산 집담회에는 전북음악협회 회장을 지내고 현재 한국음악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신상호 전북대 교수와 호남오페라단을 이끌고 있는 조장남 군산대 교수, 오케스트라 클라모를 창단한 은희천 전주대 교수, 이찬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예술사업부장이 참여했다.
▲ 서양음악 분야에서도 올 한 해 많은 공연들이 올려졌다.
-이찬=서양음악의 경우 타지역 공연장과 비교해 봤을 때 횟수만으로는 많은 편이다. 그러나 시민과 관객이 서로 호흡하는 공연이라기보다는 일방적으로 전달하거나 동호회 형태의 작은 공연들이 주가 되고 있다. 양은 많은데 비해 질적인 성장도는 더딘 것 같아 아쉽다.
-은희천=음악회가 정말 많아졌다. 소리전당만 봐도 모악당, 연지홀, 명인홀까지 풀로 가동되고 있다. 양적으로 많아진다는 것은 분명 좋은 현상이긴 하지만, 질적 성장도 함께 이뤄져 전체적으로 공연 수준이 높아져야 할 것이다.
-신상호=예술이란 한 시대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지역에 현대음악이 있는가? 다양성이 부족한 것 같다. 다채로운 공연이 펼쳐질 수 있는 장도 필요하다고 본다.
△ 서양음악을 전공한 한 음악인으로부터 "전라북도에는 국악만 있고, 양악은 없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음악인들 위주로 국악에 비해 양악은 홀대당하고 있다는 인식이 강한 것 같았다.
-신상호=실제로 그렇다. 자치단체에서는 정체성을 운운하며 전통음악 중심의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꼭 국악을 해야만 정체성인가? 정체성이란 현재 발을 디디고 있는 우리 생활 속에서 주인의식을 갖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은희천=정책적인 지원만을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어 우선 당장 대중화를 위한 작업들을 해나가고 했다. 표를 사줄 수 있는 관객들을 모아야 겠다는 판단에 클래식 관련 교육 프로그램이나 대중화를 위한 프로그램 등을 진행해 왔고, 그 결과 클래식 매력에 빠진 마니아들도 발굴할 수 있었다.
▲ 전라북도에 오케스트라가 많다. 관립만 해도 전주·군산·익산·정읍시립교향악단이 있으며, 민간에서도 많은 것으로 알고있다.
-조장남=오케스트라는 음악이 전반적으로 발전하는 데 있어 기본이 된다. 전북의 경우 시단위에서 운영하는 오케스트라만 4개다. 우수한 지휘자와 플레이어들이 시립에 들어가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여건이 만들어져야 하며, 공개 오디션 등 엄격한 기준을 통해 단원들의 순환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은희천=창단연주회는 하지 않았지만, 올해 민간오케스트라 '클라모'를 만들었다. 실력있는 음대 졸업생들을 수용하기 위한 곳도 필요했지만, 관립단체들이 변화할 수 있도록 자극의 역할도 하고 싶다. '클라모'는 세차례 오디션을 통해 단원들을 선발하고 있으며, 단원들에게 월급도 주고 있다. 지금은 후원회원들에게 의지하고 있지만, 점차 경쟁력을 키워나가겠다. 개인적으로는 민간과 사설의 개념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민간은 일정하게 페이가 지급돼야 하며, 뜨내기 연주자들이 모인 단체는 사설이라고 본다.
-신상호=지역에 오케스트라가 너무 많은 것 같다. 실제로 관립단체라도 2관 편성을 못하는 곳이 많으며, 한 연주자가 여기저기 불려다니며 활동하는 경우도 많다. 당연히 질적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 과거에 비해 지역 오케스트라 수준이 높아지기는 했지만, 때로는 정리의 필요성도 느낀다. 오케스트라마다 음악 장르나 관객층에 따른 차별화도 필요하다.
▲ 올 한 해 유난히 오페라가 활발했던 것 같다. 전문 오페라단 뿐만 아니라 각 대학에서도 오페라를 올렸다. 소극장 오페라도 많았고, 반응도 좋았다.
-조장남=호남오페라단을 운영하며 우리 음악과 오페라를 접목시켜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그동안 창작오페라만 8편을 제작했으며,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6회 이상 우수창작오페라에 선정되기도 했다. 전라북도의 역사적인 문화유산을 소재로 활용한 것이 많은 도움이 됐다.
-신상호=사실 전북에만 문화적 유산이 많은 것은 아니다. 문화유산에 주목해 음악적 소재로 재탄생시킨 안목이 중요한 것이다. 호남오페라단 외에도 전북오페라단, 서동오페라단도 나름의 활동을 통해 오페라 대중화에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있다.
-은희천=지역적 소재를 무대화하면 비교적 쉽게 대중의 관심을 끌 수 있다. 지역적 소재를 선택하되 질적인 수준이 담보돼야 대중들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을 것이다.
-조장남=작품 수준을 올리는 데 전력투구하고 있다. 가장 좋은 여건인 서울과 비교·평가 한다면, 완성도도 높은 편이다. 각 극단마다 대형오페라를 올리려는 욕심들이 있지만, 단막극 소극장용 오페라로 지역 순회를 하는 것도 오페라 대중화에 큰 도움이 된다. 올해 처음 시도한 소극장 오페라는 7일 동안 전부 만석이었으며, 적자도 안봤다.
▲ 서양음악이 풀어야 할 과제가 있다면.
-이찬=나 역시 연주자로 활동했었지만, 안되겠다 싶어서 기획자로 돌아섰다. 전주에도 수준 높은 연주자나 연주단체들이 있다. 실력별로 상·중·하가 있는 것은 서울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여기는 기획자가 없다. 퓨전이 유행이라고 해서 무작정 섞을 것이 아니라 관객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결합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기획력이 필요하다.
-조장남=정책적인 배려와 기업이들의 메세나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지원에 있어서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간단한 예로, 수준 높은 공연을 할 수 있는 단체와 신생단체를 동일하게 취급해서는 안될 것이다.
-은희천=도내에서는 현재까진 국악이 앞서갔으니까, 이젠 양악도 함께 갈 수 있는 장을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더불어 서양음악을 어렵게만 느끼는 일반인들을 위한 교육도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신상호=여론을 유도하고 조성하는 층의 관심이 국악 쪽으로만 치우쳐 있다는 인상이다. 언론의 관심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