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窓] 그래도 희망의 강물은 흐른다 - 권순택

권순택(제2사회부장)

어릴 적 시골 동네 앞에 흐르던 개울의 추억이 아직도 아련하다.

 

여름 낮에는 더위를 피해 물장구 치고 밤에는 솜뭉치로 횃불을 만들어 물고기를 잡던 기억이 새록새록 묻어난다. 변변한 놀이시설 하나 없던 그 시절엔 개울이 유일한 놀이터였다.

 

하지만 여름 가뭄이 심해지면 개울은 물풀이 말라붙어 허연 거죽만 드러낸 채 앙상한 몰골로 드러누워 있다. 뜨겁게 달구어진 자갈위에는 피라미 새끼와 송사리떼만 빼빼 말라 비틀어져 뒹굴고 있을 뿐이다.

 

그러다 비가 내리고 물이 흐르면 사막 같던 개울은 금새 생기가 넘쳐난다. 어디서 올라왔는지 여울목을 뛰어 오르는 피리와 붕어들. 이를 노리고 투망을 메고 길목을 지키는 천렵꾼들. 아이들도 마냥 좋아 옷도 벗지 않은 채 물속에 풍덩 풍덩 뛰어든다. 혹독한 가뭄을 견뎌낸 개울엔 다시금 생명이 꿈틀댄다.

 

글로벌 경제위기로 국가경제는 물론 기업과 가정 모두 허리띠를 졸라 매고 있지만 물이 말라가는 개울처럼 위기상황이 더 심각해지고 있다. 경제 주체들이 긴축과 구조조정, 씀씀이를 줄이고 자구책 마련에 나서고 있으나 여전히 암울한 상황이다.

 

그래도 경제 하나만큼은 잘 챙길 것이라 기대했던 이명박 정부는 경제난과 외환위기에 갈팡질팡 갈피를 못잡고 있다.

 

세상살이가 더 팍팍해진 서민들에겐 절망과 낙심, 한숨과 한탄만 쏟아져 나온다. 구조조정 한파에 실직당한 사람들은 찬 겨울 길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직장을 잃은 가장으로 인해 가정경제는 파탄 나고 청년 실업자는 일자리가 없어 점점 희망이 잃어가고 있다. 지난해 국내 중소기업만 2000개 가까이 부도나고 자살률은 OECD 국가중 1위로 올라섰다.

 

참으로 회칠한 무덤속 같다.

 

이같은 세태를 풍자한 허무 개그가 최근 인기를 끌고 있다.

 

KBS '개그 콘서트'에서 한 개그맨이 애절하고 어눌하게 부르짖는 '난~ …뿐이고'라는 극적 반전대목이 클라이막스다. 잘 나가다가 절망과 좌절에 빠진 우리들의 군상을 우회적으로 풍자한 탓에 시청자들로부터 더욱 공감을 얻고 있다.

 

하지만 새벽 여명이 밝아오기 직전이 더 컴컴하듯 질흙 같은 어둠도 날이 새면 모두 걷히기 마련이다. 지금 삶이 아무리 고되고 암울할지라도 결코 희망의 끈을 놓아선 안된다. 그래도 마지막 기댈 것은 희망 뿐이기 때문이다.

 

희망은 1%만 있어도 가능하다. 희망과 절망이 반반이면 저울은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나 절망 49%, 희망 51%면 저울은 반드시 희망 쪽으로 기울게 된다. 단 1%의 희망만 더 가지면 우리의 삶은 달라질 것이다. 조금 나은 것, 조금 좋은 것 1%는 우리에게 미미하고 소소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팽팽한 평형 저울에선 아주 미미한 무게에도 한 쪽으로 기울기 마련이다.

 

비쩍 말라붙은 개울도 비가 내리고 물이 흐르면 다시 생명을 되찾듯이 희망의 작은 물방울이 모이면 물줄기를 이루고 냇물을 만들고 강과 바다를 채우는 것이 자연의 이치다.

 

희망의 강물은 언제나 흐르고 있다.

 

/권순택(제2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