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 장 자크 루소의 '에밀'

'자식 망치는 교육' 궁금한가요?…조기교육·주입교육·엘리트교육 '교육 편집증'이 아이들 망가뜨려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한다. 이럴 때마다 "어떻게 살 것인가?"하고 우리 자신에게 묻게 된다. 이 물음은 곧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하는 반성과 직결된다. 삶을 계획한 초심은 한 해의 세파를 거치면서 거의 어김없이 마모되고 굴절되곤 한다. 초심이 이렇게 속절없이 변해 버리고 말 것이라는 것을 매년 경험하지만, 아니 그렇기 때문에, 새해에 우리는 다시 마음을 다잡고 싶어진다.

 

이런 순간 인생을 통찰하고 있는 현자(賢者)가 옆에 있어 진솔하면서도 의미 있게 사는 법에 관해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루소를 오랜 친구로서 초대한다면, -확신하건대- 그는 결코 초대를 거절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에밀』을 손에 들고 나타날 것이다. 이 두꺼운 저서는 그가 20년에 걸쳐 숙고했고 3년 동안 집필한, 그야말로 혼신의 힘을 다한 지혜의 선물이다.

 

『에밀』은 흔히 교육서로 취급되고 있지만, 사실은 우리들 인간이 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겪게 되는 과정에 대한 명상이고, 이로부터 길어 올린 삶의 교훈 모음집이라고 할 수 있다. 얼핏 『에밀』은 "사람(루소)이 사람(에밀)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하는 문제에 집중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문제는 곧 "사람을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의 문제와 동전의 양면을 이루고 있다. 말하자면 "사람됨이란 무엇인가?"를 중심으로 사물과 인간, 인간과 인간 관계의 총체적인 측면이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에밀』에서 가장 핵심적인 요점 가운데 하나는 사람이 사람을 망치는 교육에 대한 경고일 것이다. 무엇보다 『에밀』에서 (특히 아직 독립적인 판단력이 서지 않은 어린이에게) 행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들고 있는 교육 행태가 조기 교육이다. 주입교육, 엘리트 교육 등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교육은 아이들을 가장 신속하고도 효과적으로 파괴하는 독약과도 같다. 현학적인 교육 편집증에 빠진 어른들은 아이들을 "기형과 괴물로 만들어 놓고" 좋아라 한다. 상대방(어린이)의 수준이나 세계를 세심하게 배려하는 대신 일방적인 통행만을 강요하고 경쟁을 부추기는 교육은 야만적이다. 『에밀』에서 행해진 교육에 대한 비판은 마치 우리나라의 현재 교육 시스템을 보고 쓴 글처럼 현실감이 있고, 또 그만큼 아프다.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과 비교되어서는 안 된다. 오로지 과거의 자신과 오늘 향상된 자신과의 비교만이 필요할 뿐이다. 비교와 극복의 대상은 타인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다. 아이들은 뛰고, 놀고, 들판을 내달리며 마음껏 소리 지르고, 자연을 향유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마침내 지성을 교육시킬 수 있는 때가 온다. 그럴 때 어른들은 (아이들의 의사를 존중하면서) 아이들의 지성을 가꾸어줄 줄 알아야 한다.

 

아이는 아이가 되어야 하며, 어른은 어른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아이를 아이로 만드는 것은 바로 어른이다. 그래서 아이에 대한 교육은 아이의 문제가 아니라 어른의 문제인 것이다. 때가 되길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는 것. 이것이야말로 『에밀』에서 루소가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후렴구처럼 되뇌는 삶의 경구이다. 비록 어리다 해도 또는 어리석게 보인다 해도, 타인이 보고 생각하고 느끼는 고유한 방식을 인정하는 것이 바로 자신을 올바로 세우는 일임을, 또한 그것이 참된 사랑임을 『에밀』은 말해준다. 『에밀』은 천천히 세상을 사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세상의 풍조와 거리를 둔 사람들에게 깊은 위안을 준다. 새해를 맞이하여 『에밀』을 읽으면서 마음의 때를 닦아보면 어떨까?

 

/황설중(본지 서평위원· 원광대 인문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