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방송가 '제작비 칼바람' 매섭다

최근 화제작 KBS 2TV '꽃보다 남자'의 제작사 그룹에이트는 방송사와 독특한 계약을 했다. 제작비를 상대적으로 적게 받는 대신 해당 드라마에 대한 광고가 많이 판매되면 이를 보전받는 내용이다.

 

MBC에서는 캐스팅, 편성, 제작진 구성이 완료된 드라마가 제작비 문제로 방송이 무산되는 경우가 생겼다. 내년 3월 방송 예정으로 최불암, 나문희, 윤손하, 엄기준 등이 캐스팅된 '그대를 사랑합니다'다.

 

경제 불황이 방송가를 강타하면서 드라마 시장에 '제작비 칼바람'이 불고 있다.

 

캐스팅, 편성, 저작권 등 제작에 관련된 여러 요인 중 재원 마련 부분이 절대적 요소로 떠오르면서 비용 때문에 다른 요소가 희생되는 경우가 종종 빚어지고 있다.

 

사실 지난해 중반까지만 해도 방송사는 드라마를 이용한 다양한 수익모델 개발에 많은 신경을 썼다. 자체 제작 역량을 강화하는 여러 대책을 마련했고, 자회사에 드라마 제작을 맡겨 협찬 수익과 광고 수익을 동시에 노리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광고 매출이 격감한 각 방송사는 긴축 경영에 돌입했다. 제작비 절감, 스타 출연료 삭감 등 다양한 자구책을 마련하며 수익구조가 안정적인 제작만을 선호하게 됐다.

 

특히 '꽃보다 남자'의 '광고 연동제'는 방송가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독특한 사례다. '시청률 연동제'나 스타의 상품성 같은 다소 막연한 잣대 대신 수익에 직결되는 광고를 제작비 산정에 직접 동원한 셈이다.

 

그룹에이트의 한 관계자는 "방송사 입장에서는 제작비를 덜 줄 수 있으며, 광고가 많아지면 서로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라며 "시청률이 정말로 많이 나와야 광고가 붙는 만큼 책임이 더욱 커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대를 사랑합니다'도 방송가의 관례에 비춰볼 때 상당히 이례적이다. 이 드라마의 외주제작사가 제작비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MBC는 다른 경로를 통해 경비를 충당해 제작을 강행하려 했으나 결국 비용 문제로 방송을 코 앞에 둔 드라마를 날리는 '초강수'를 둔 것이다.

 

방송사가 직접 나서서 외주제작사의 경비 운영을 관리 감독하는 예도 있다. 조만간 방송될 한 드라마의 경우 외주제작사가 제작과 관련해 일정 금액 이상을 지출하려면 방송사로부터 '허락'을 받아야 한다. 역시 경제 불황이 닥치면서 새롭게 생긴 풍경이다.

 

한 외주제작사의 대표는 "방송사들은 최소한의 지출로 안정적인 제작이 가능한 드라마만 찾고 있다"며 "판권의 일부를 포기하면서까지 제작비를 낮추는 등 '돈 문제' 해결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처럼 지나친 긴축은 드라마의 발전에 부작용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방송사의 한 관계자는 "방송사가 적자에 허덕이면서 드라마 제작이 적자의 큰 원인으로 지적됐다"며 "하지만 콘텐츠가 해외에서 대박이 날 경우 가장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분야도 드라마"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지금처럼 판권 등 미래 가치를 포기하면서 눈앞의 고정 수익에만 매달리면 1~2년 후에는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며 "무리하게 제작비를 낮추면 드라마의 질도 상대적으로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대를 사랑합니다'처럼 캐스팅이 마무리된 후 방송이 무산될 때는 해당 배우들도 큰 피해를 당하게 된다. 특히 배우 엄기준은 이 드라마에 출연하기 위해 KBS1TV 일일극 '집으로 가는 길'의 출연을 마다했기 때문에 이중으로 피해를 보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