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존재할까, 존재하지 않을까.
달걀이 먼저인지 닭이 먼저인지를 고민하는 것 보다 더 복잡하고 힘든 질문이다. 신이 있다면 그 신은 한명인지 혹은 여러 명인지, 어떤 모습인지, 성별은 무엇인지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신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이 영화를 보고 있자면 차라리 신이 없기를 바랄 것이다. 영화 '디파이언스'.
2차 세계대전, 혼란스런 전쟁 속에 유태인 학살은 비극으로 치닫고 있다. 게토에서는 끝없이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유태인 뿐 아니라 유태인을 숨겨 준 사람도 가차 없이 죽이는 잔인한 시대. '신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유태인들은 이 가혹한 현실에 '이제는 더 이상 흘릴 피와 눈물이 없으니 다른 민족을 택해 달라'고 기도한다. 살기위한 끝없는 싸움의 중심, 비엘스키 형제와 유태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만나보자.
영화 '디파이언스'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유태인 피난민들을 구한 비엘스키 형제의 이야기를 실화로 하고 있다. 1941년 유럽이 히틀러 군대에 점령당하고 부모를 잃은 투비아(다니엘 크레이그)는 남동생 셋을 데리고 숲으로 피신한다. 음식을 찾아 마을로 나갔다가 숨어있던 동족을 숲으로 데려오고, 죽음을 피해 숲으로 도망 온 피난민들을 모두 받아 마을까지 이루게 되지만 동생 주스(리브 쉐레이버)는 은신처가 발각될 것을 염려해 반대한다. 숲 속에서 겨울을 나야하고 음식을 구해야 하는 참혹한 현실. 투비아의 "우리가 살아남는게 저들에(나치)에 대한 복수"라는 대사처럼 힘든 순간에도 인간다움, 자유를 찾아 숲으로 온 것을 기억해 내며 사람들을 이끈다. 이들은 그렇게 2년이 넘는 시간을 숲속에서 살아 결국 해방의 순간을 맞게 된다.
전쟁이 끝나고 비엘스키 형제는 자신들의 공을 세우지 않고 평생을 평범하게 살았지만 그들이 살린 사람들과 그 후손을 더하면 5만명이 넘는다. 큰 형 투비아가 사망한 1987년 이후 비엘스키 형제에 대한 조사가 활발히 이뤄졌고 1993년에는 「디파이언스: 비엘스키 유격대」라는 책이 출판돼 영화로 이어진 것이다.
여느 실화를 바탕으로 한(특히 역사물의 경우) 영화들처럼 역사적으로 맞지 않는 부분이라고 지적되는 부분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마지막일 수 있는 상황에서도 온전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삶을 택한 자유의지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 무엇보다 스토리에 마음을 뺏기게 돼 쫓기는 유태인에게 동화되어 영화를 보는 내내 긴장을 늦출 수 없다. 비록 이야기가 중간 부분에 힘을 잃어 설득력이 떨어지지만 그렇게 쫓기는 입장이었다면 일관성 없는 행동이, 사람의 성격이 바뀌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영화 보는 내내 조마조마한 가슴을 진정시키려면 이 정도의 합리화는 필요할지도.
'007 시리즈'의 다니엘 크레이그가 주인공을 맡아 사실적이고 현실적인 캐릭터를 완성해 냈으며 크레이그 뿐 아니라 강렬한 메시지를 담아낸 다른 인물들의 연기 또한 완벽하다고 할 수 있다. 2차 세계대전에 대해 조금만 사전 지식을 쌓아 간다면 영화의 재미와 함께 머리도 가득 채울 수 있을 것. 아이들에게 설명하기 어려운 그 시대상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다.
영화 '다크 나이트'의 음악 감독이기도 했던 제임스 뉴튼 하워드의 웅장하고 화려한 음악도 기대해 볼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