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힘 2050] 부안 여성농기센터 대표 임덕규씨

"'젊은 농촌 만들기' 꿈 키우며 부농 일궈요"

부안 토박이를 자처하는 '똑순이' 아줌마다.

 

연고는 없지만 '생거부안(生居扶安)'인 이곳이 좋아 농사를 지었다.

 

농사일과 육아, 가사로 쉴틈없는 농촌 여성문제를 고민만 하지 않고 대안을 제시해 맞섰다. 농사일 외에도 어린이집, 방과후 공부방, 이주여성 한글교육 등으로 바쁘게 보내고 있는 부안여성농업센터 대표 임덕규씨(42·사진)다.

 

그는 서울대 영문학과 재학 시절 학생운동에 참여해 전대협 농민분과장으로 수배자명단에 올랐다. 수배자는 연고가 없는 곳으로 가야 했기 때문에 부안에 뿌리를 내리면서 제2의 고향이 됐다.

 

"대학 1학년 때 농활가서 느낀 게 많았어요. 농사를 지어야겠다고 마음 먹었는데, 부안여성농민회에서 간사가 필요하다고 해 미련없이 내려왔죠."

 

남편은 자신의 고향인 순천으로 터를 잡고 싶어했지만, 그 고집도 꺾을 만큼 부안이 좋았다. 바다와 산을 끼고 있고, 때묻지 않은 인심을 지닌 사람들이 있었기에 고민할 이유가 없었던 것.

 

하지만 농사일은 하루종일 매달려도 혀를 내두를 만큼 고된 일이었다.

 

"고령화가 심각해서 칠순이 다 된 어르신들이 밭에서 깨를 심으세요. 그런데 젊은 사람들은 이분들 속도 못 따라갑니다. 또 그렇게 일을 하시고도 아무런 불평을 안하세요. 당신들 일이라면서. 그래서 더 놀라죠."

 

임대표는 농사일, 집안일, 아이들 키우는 일까지 도맡아 군말없이 해내는 여성들을 보면서, 대단히 훌륭한 사람들이라는 확신을 더욱 깊이 갖게 됐다.

 

1992년 대통령 선거 당시 여성농민 관련해 여성농민센터 건립이 공약으로 제시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전국 5곳 시범사업으로 여성농민센터가 만들어졌고, 부안여성농민센터는 2002년 그때 세워졌다.

 

"농사일 하면서 얘 키우기가 힘들었어요. 십 몇 만원씩 하는 보육료도 부담돼 현장에 데리고 다녔습니다. 논밭 인근에 저수지도 있고 뱀도 가끔 나오고 해서, 트럭에 태우기도 하고, 아이를 달아나지 못하도록 나무에 묶어두고 일을 하기도 했어요. 믿고 맡길 만한 공간이 없었거든요."

 

센터 건립은 그만큼 여성농민들에게 절실한 화두였던 셈.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를 이유로 센터 지원금이 제때 지급되지 않아 임원들끼리 대출받아 운영금을 만들기도 했고, 늘어난 상근 인력에 따른 추가 지원이 없어 월급을 나눠쓰는 웃지 못할 헤프닝도 있었다. 내년부터 사업규모에 맞게 차등지원하겠다는 전라북도의 방침이 세워져 그나마 한 숨 돌렸다고.

 

현재 그는 논과 밭농사, 고추농사를 하고 있다. 하우스나 특용작물 재배는 가격변동이 커서 위험부담이 많다고 여긴다. 농촌은 도시에 비해 씀씀이가 크지 않아, 소박하게 살기 때문에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다.

 

"'88만원 세대' 20∼30대 실업자, 비정규직 운운할 때마다 전 젊은 사람들이 농촌에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많이 해요. 영농인후계자제도나 귀농자 위한 융자지원 등을 찾아보면 기반 잡고 살 방법이 다 있거든요. 농업에 대한 낭만이 아니라 철학을 있는 젊은 친구라면, 이곳 생활에 만족할 거란 확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