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窓] 정동영의 침묵은 금이 아니다 - 김성중

김성중(편집부장)

정동영의 침묵이 계속되고 있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면 침묵을 깨뜨릴 시점을 계산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는 오는 4월 29일 재선거에 대한 입장을 아직 정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정치권은 물론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온갖 말들이 쏟아지고 있다.

 

정작, 정동영 본인은 말이 없는 데 주변에서 말이 많아진 이유는 단 하나. 과연 정동영이 출마 하느냐, 마느냐가 궁금해서다. 단어로 치자면 '한다' '안 한다' 두 세 자 이거늘 그 말 듣기가 참으로 어렵다.

 

명색이 국가를 이끌겠다는 거물 정치인이 동네(전주 덕진) 금배지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 '훗날'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지지기반이 강력한 전북에서 국회의원을 해야 한다는 주장. 이 두 의견이 날카롭게 대립한다. 여기에다 이번에 수도권 전쟁터로 나가 MB세력과 겨뤄야 명분이 선다는 당위론까지. 정동영의 결단은 이래저래 힘겹다.

 

옛말에 우선 먹기에 곶감이 달다고 했다. 곶감이 먹기에 편하다는 뜻과 함께 잘못 먹으면 소화불량에 걸린다는 경고의 의미도 담긴 말이다. 사실 정동영의 큰 꿈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하지만 여의도 국회의원과 여의도 밖 정치인의 간극은 너무 크다. 이에 따른 정동영의 현실적 고통 또한 견디기 힘든 현재진행형이다. 그의 눈길이 '곶감'에 꽂힐 법한 이유다.

 

정동영의 고민은 예서 그치지 않는다. 정치의 예측불가능성. 그의 머리를 어지럽히는 또 다른 화두다. 좀 더 기다리느냐, 지금 뛰어드느냐. 뛰어든다면 그 곳은 어디인가. 전주인가 수도권인가. 아무도 시원스런 대답을 못한다. 자신은 물론 지지자들도 마찬가지다. 순간의 선택이 결과를 180도 바꾸는 게 바로 정치기 때문이다.

 

고충은 또 있다. 바로 말이다. 말 한마디 잘못하면 공든 탑이 무너진다. 정치인의 한 마디는 엄청난 파괴력과 후유증을 불러온다. 그 걸 가장 잘 아는 대표적 정치인이 바로 정동영이다. 2004년 총선을 앞두고 '어르신들은 투표하지 마시고 집에서 쉬시라'는 발언으로 전대미문의 설화를 당한 게 정동영 아닌가.

 

당시 정동영 발언의 진정한 의미를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보수 언론과 상대진영은 본질을 무시한 채 집요한 공세를 펼쳤다. 결국 정동영은 국회의원 선거에서 비례대표 후순위를 자임한 뒤 당선권 밖으로 밀려났다. 정동영이 최근 들어 지나칠 정도로 말을 조심하는 배경에는 이 같은 학습효과도 자리한다.

 

여기까지는 정동영의 판단이라고 치자. 하지만 그를 여전히 사랑하고 아끼는 국민들의 생각은 조금 달라 보인다.

 

국민들은 정치인이 선택하는 길이 넓고 당당해야 거물, 혹은 지도자라고 여긴다. 코앞에 놓인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는 모습을 두고 손가락질 할 사람은 없다. 정동영이 우선 먹기 달다는 곶감에 손을 대서는 안 되는 이유다.

 

또 풋내기 정치인은 예측을 못한다. 그저 시류에 편승할 따름이다. 그러나 큰 정치인은 예측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낸다. 예측을 현실화함으로써 국민들의 신뢰와 기대, 지지를 얻어낸다. 예컨대 진정한 지도자는 예측 가능한 정치를 해내야 한다는 얘기다. 손학규가 이미 재선거에 대한 입장을 밝힌 사실은 그래서 시사하는 바 크다.

 

아울러 말조심도 때와 장소를 가려야 설득력이 있다. 현재 전주 덕진 재선거에 대한 정동영의 침묵은 결코 조심스럽거나 신중하게 비춰지는 것만은 아니다. '침묵은 금'이라 했지만 혼란을 낳는 침묵은 빨리 끝낼수록 좋다. 말 많은 것도 문제지만 말해야 할 때에 말하지 않는 것 또한 정치인의 덕목이 아니다.

 

이제 정동영의 가는 길, 정동영의 예측가능성, 정동영의 입장을 스스로 시원스레 밝힐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