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칼럼] 수용과 관용의 사회로 - 김원호

김원호(정읍방사선과학연구소장)

로마는 광범위한 지중해 연안지역을 점령하면서 점령지역의 주민과 문화를 제국 안으로 수용함으로써 오랜 기간 강력한 제국으로 발전하였다. 금세기 로마제국과 비교될 수 있는 미국도 자국의 발전에 필요한 전문 인력은 물론 타 국가의 문화를 과감히 수용함으로써 강력한 국가로 존재할 수 있었다. 19세기 말, 우리나라는 개방과 쇄국이라는 갈림길에서 헤매고 있는 사이에 일제 강점기를 맞이하는 불운을 겪게 되었다. 당시 개방을 주장하는 새로운 세력이나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기존 보수 세력 모두 사회의 지도계층으로서 많은 학식과 경륜을 갖추고 있었지만, 눈앞의 개인적인 이익을 지나치게 추구하면서 나라를 빼앗기는 설움을 온 국민에게 안겨 주게 된다. 참으로 슬픈 역사적 사실이다.

 

원자력 발전으로 전력의 70% 이상을 공급하는 유럽의 강국 프랑스, 문화와 관광의 도시 파리 - 볼거리가 많은 파리 관광이 지루해 질 만 하면, 곧 다가오는 느낌은 지저분하고 어지럽게 도로를 질주하는 차량들과 다양한 인종이 어우러진 파리가 무척이나 어수선하게 느껴진다. 또한 파리지엥의 자유로움은 방임에 가까울 정도로 제 멋대로 인 것처럼 보인다. 도무지 질서가 없어 보인다. 도대체 무엇이 이토록 어수선한 프랑스의 파리와 방임에 가까운 파리지엥의 자유로움을 간직한 채, 유럽의 강국으로 유지하고 있는 것일까? 바로 그 힘은 똘레랑스(tolerance, 관용)라고 한다.

 

우리도 유럽과 일본을 포함한 중국, 인도, 몽고, 베트남, 필리핀, 네팔 등 아시아 국가로 부터 약 100만이 넘는 이국인이 함께 살고 있는 다문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뿌리 깊은 유교적 정신문화를 가지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도 이국인, 다문화 가정을 보수적인 시각으로 보고 있는 것도 우리의 현실이다. 受用과 寬容에 대하여 다시 한 번 곰씹어 봐야 할 시기가 아닌가? 어려서부터 교육을 통하여 오천년 유구한 역사를 지닌 동방의 횃불, 은둔의 나라, 단일 민족으로 인식되어 온 우리의 생각이 크게 흔들리는 일이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변화의 물결 속에 얼마나 우리 것을 지켜야 하는지? 이렇게 서로 상반되는 개념을 조화롭게 융합하여야 하는 일은 늘 우리의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하기 마련이다.

 

올해는 1859년"종의 기원"을 발표하여 생물학은 물론 서양 철학에 진정한 혁명을 몰고 온 찰스 로버트 다윈이 탄생한 지 2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진화론의 핵심원리는 자연생명체가 자신의 생존습성에 적응하기 위하여 환경과 필요에 따라 자연 선택적으로 적응해간다는 사실이다. 생물학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는 진화론의 원리는 사회 현상에도 적용할 수 있어 보인다. 변화의 물결 속에서 우리 것을 지키는 것과 우리 것이 아닌 다른 것을 수용하는 문제는 환경과 필요에 따라 선택적으로 이루어 질 것이다. 서로 충돌하면서 환경과 필요에 따라 조정되고 선택적으로 수용되는 과정을 거치게 될 것이다. 다른 것을 수용하는 것도 끊임없이 진화하는 과정의 일부분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자연 선택적으로 이루어지는 생물학적 진화와는 달리 사회의 구성원 또는 지도자 그룹이 그 환경과 필요를 조성하게 되는 것이다. 사회적 진화는 자연 선택적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만들고 선택해 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동과 통신 수단의 발달로 지구촌이 하나로 엮어지는 개방의 시대를 살고 있으며, 세계적인 변화의 물결 속에 더 이상 닫힌 사고와 이기적인 생각으로 머물러 있을 수 없다. 우리가 스스로 만들고 선택해 가는 사회적 진화 과정에서 受用과 寬容이라는 열린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내 것과 내 것이 아닌 다른 것을 조화롭게 융합시켜 나가는데 매우 큰 충돌을 야기하게 될 것이다. 이제는 우리도 受用과 寬容이라는 열린 생각이 풍만한 사회로 다가 가야만, 급격한 변화의 물결 속에 휩쓸리지 않으며 새로운 환경과 필요에 원만하게 적응해 나가게 될 것이다.

 

/김원호(정읍방사선과학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