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 시장의 푸르른 새벽시간 - 원용찬

원용찬(전북대 경제학과 교수)

씰비아 플라스(Sylvia Plath)라는 시인은 새벽을 이렇게 말한다.

 

"내 시들은 동이 트기 전, 우유배달부가 오기 전, 거의 영원에 가까운 푸른 새벽에 씌워진 것입니다."

 

성스러운 기운이 감도는 새벽녘에 시어(詩語)를 낚는 시인의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그래도 우리들의 새벽은 해장국밥집에서 주모의 왁자지껄한 목소리가 푸르름의 성스러움을 깨워줘야 제 맛이 난다.

 

◇불확실, 애매모호함, 미로, 모순, 포용

 

새벽은 영원에 가까운 성(聖)과 일상의 세속[俗]이 서로 겹치는 시간대이다. 새벽은 밤도 아니며 낮도 아닌 애매모호함이 잠간 머무는 자리이다. 새벽은 밤과 낮이 구분되지 않기에 이것이냐 또는(or) 저것이냐가 아니라, 이것이면서도 그리고(and) 저것을 동시에 포용해준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라면 그것은 애매모호한 모순의 시간대일지 모른다. 그렇다. 새벽녘에 콩나물 국밥집에서 앉아서 이마와 목덜미에 흐르는 맺은 땀을 손등으로 훔쳐내고, 어제 과음으로 늦은 귀가시간 때문에 불만스러웠던 부인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함께 국밥을 뜨면서 해득거린다. 그래서 전주 남문시장의 콩나물 국밥집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나를 포함해서 모두가 모순덩어리며 속없는 사람들이다.

 

꾸불꾸불한 남문 시장통에 들어서서 미로의 길을 따라 걷는다. 시장의 미로는 언제나 어둠침침해서 항상 새벽처럼 희끄무레하다. 직선의 길이 모든 경계선을 가르는 근대화의 상징이고 인위적인 것이라면 미로의 꼬불꼬불한 곡선은 먼 옛날의 신화가 숨 쉬며 자연적이고 웬만한 것을 아우르고자 한다.

 

새벽은 경계선이 불확실한 미로의 곡선과도 같다. 여기에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애매모호함과 모순이 담겨있다. 새벽형 인간은 단순히 아침 일찍 일어나는 사람만을 뜻하지 않는다. 진정한 새벽형 인간을 생각하면 햄릿이 모습을 드러낸다. 복수를 통해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 아니면 그냥 해야 할 일을 외면하고 숨쉬기만 하면서 살아야 하느냐, 그럴 바에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낫지 않나라는 삶과 죽음의 모순 속에서 고민하는 망설임(delay)과 우유부단함은,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가 ??계몽의 변증법??에서 말했던 것처럼 "햄릿 이후 망설임은 현대 사상에서 사색과 인간적인 것의 징표"가 되었다.

 

◇불도저와 직선으로 밀고나가는 근대화의 부활

 

빛바랜 나이에 뒤돌아보니 삶이 거창한 것도 아니기에 술을 적당히 마실 법도 하건만, 번뇌하는 우리들의 햄릿은 여지없이 새벽이 되면 시장골목으로 몰려든다. 새벽 일상은 동트기 전의 푸른빛을 깨뜨리고, 밤과 낮이 공존하는 애매모호한 경계선 속에서 모순까지 포용한다.

 

지금 우리들의 시간은 어디 메쯤일까. 어떤 것을 일도양단하여 결단하고 불도저처럼 직선으로 밀고나가는 알렉산더의 근대화가 다시 부활하고 있다. 속도전에 밀려 사람들이 정든 터에서 쫓겨나고 죽고 다친다. 어둠 속으로 다시 후퇴하는 푸른 빛깔과 포용, 번뇌하는 햄릿과 성찰을 다시 새벽으로 불러내야 한다.

 

/원용찬(전북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