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窓] 국민생명을 '접시'로 여기는 정권 - 김성중

김성중(편집부장)

지난 1월 20일 서울 용산 재개발 철거민 다섯 명과 경찰특공대 한 명이 숨졌다. 야당과 시민단체는 책임자 처벌을 촉구했다. 하물며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도 김석기 경찰청장 퇴진을 주장했다. 여당 대표 발언치고는 의외였지만 명분을 가진 말이었다. 이 때문에 인사권을 쥔 청와대도 속을 끓이고 있었다.

 

그러다 분위기가 확 변했다. 경기도 연쇄살인범 검거가 큰 영향을 미쳤다. 국민의 시선이 분산됐다. 이번에도 보수언론이 '제대로 한 몫' 했다. 연쇄살인에 대한 매체의 보도 분량이 21명을 살해한 유영철 사건 때보다 배가 많았단다. 특히 일부 언론은 피의자와 가족의 인권에 대한 성찰과 사회적 합의 없이 속칭 '악마의 얼굴'을 전격 공개했다. 여론은 급격하게 '용산'을 떠나 '얼굴'로 옮겨갔다.

 

검찰도 힘을 보탰다. 용역 개입 문제를 처음부터 외면했다. 그러다 MBC 피디수첩에 용역이 물대포를 쏘는 동영상이 보도됐다. 검찰은 수사를 확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수사결과는 '공권력 무죄, 철거민 유죄'였다.

 

용산 참사를 중심으로 벌어진 일련의 흐름이다. 용산 파문이 연쇄 살해범 검거로 인해 '물타기' 되고 있었다는 얘기다. 여기까지는 '촛불'을 두려워하는 권력기관과 보수언론의 국면전환 전략이 성공하는 듯 했다.

 

하지만 예기치 않은 사건이 터졌다. 청와대 5급 행정관이 경찰홍보담당관에게 메일을 보냈다. '연쇄살인 사건을 최대한 이용해 '용산'이 '촛불'로 번지는 것을 막으라'는 지시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모습이다. 맞다. 군사독재정권 시절의 여론조작 기법이다.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박종철 사건과 다르지 않다. 차이가 있다면 당시에는 경찰이 했고 이번에는 청와대가 했다는 사실이다.

 

청와대는 처음에 잡아뗐다. 정황이 드러나자 사흘 만에 '개인 아이디어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행정관을 구두 경고하는 것으로 끝내려 했다. 지난 정권 때 비슷한 일에 거품을 물던 보수언론도 덩달아 못 본 체 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행정관이 사표를 냈다. 물의를 일으켰기 때문이란다. 청와대가 '말로 주의를 주고' 끝낸 일인데 왜 당사자가 사표를 냈을까. 논리로 보면 청와대가 행정관의 사표를 반려해야 앞뒤가 맞는 노릇이다. '도마뱀 꼬리 자르기'라는 지적이 그래서 나온다.

 

결국 용산참사→청와대 대응→이메일→구두경고→자진사표 과정을 뜯어보면 정권의 그릇된 인식구조가 드러난다. 되짚어 보자. "청소하다 보면 접시를 깰 수도 있다"고 했다. 용산 참사에 대한 청와대 핵심관계자의 말이다. 언어는 생각으로부터 나온다. 국민의 생명을 '접시'에 비유하는 정권. 생존권을 외치는 민초들을 진압하는 일을 청소나 설거지로 여기는 정권. 그래놓고 접시 몇 장 깨지는 게 뭐 그리 대수냐는 식이다.

 

청와대 부대변인도 '과격시위의 악순환이 끊어지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국민이 희생된 사건을 어떤 '계기'로 삼고 싶은 천박한 인식이다. 그는 파문이 일자 '개인적 견해'라며 말을 거뒀다. 대체 청와대 사람들은 무슨 개인의견이 그리 많나. 청와대가 공인은 없고 개인만 근무하는 기업인가. 그들이 과연 누구를 위해 일하는 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기억컨대 취임 초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을 섬기는 정부'를 표방했다. 용산 철거민 또한 그가 섬기겠다던 바로 그 국민이다. 그러나 용산의 '접시'는 깨졌다. 따라서 이번 사건은 국민에게 생존의 과제를 던져준다. 바로 정부가 섬긴다는 '국민'과 청와대 핵심이 말한 '접시'의 차이를 빨리 깨닫는 일이다. 안 그랬다간 누구든 '접시'가 될 수 있어서다.

 

/김성중(편집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