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메아리] '논' 을 말한다 - 김신재

김신재(icoop 전주소비자생활협동조합 이사장)

차를 타고 15분만 나가도 전주 지역에서는 논을 만날 수 있다. 전주 인근에는 평야가 많다. 가을이면 누렇게 익은 벼들이 출렁이는 모습이 우리에게 가장 많이 기억나는 논에 대한 이미지가 아닐까? 우리에게 밥이 되는 쌀을 재배하는 곳, 이것이 논에 대해 우리가 가장 큰 효용가치를 부여하는 지점일 것이다. 도시에서 소비자 운동을 하는 나 또한 논에 대해 그 이상의 깊은 의미를 부여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적어도 2008년 이전까지는...

 

2008년 람사르 총회에서 '논습지 결의안'이 통과되었다. 논습지 결의안은 쌀뿐만 아니라 다양한 생명의 서식지로서의 논의 생태 환경적 가치를 인정하고 이를 증진시키기 위한 노력을 당사국들이 해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람사르 총회의 논습지 결의안 채택은 국가간의 강제적 협약이 아니어서 이행하지 않을 경우 제재하지는 못한다. 법률적인 효력을 갖기보다는 선언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국내적으로 정부가 논 습지를 없애는 정책을 펼치지 않도록 요구하고 농업의 보전으로 수자원을 확보하고 생태계를 보전하며 이를 위해 정부가 환경 직불제 등의 실질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하는 바탕이 될 수 있다. 논을 쌀을 만드는 농업으로서만이 아닌 습지라는 환경적 가치를 국제적으로 부여함으로써 이 환경을 지키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정부나 민간이 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할 수 있기에 결의안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논이 습지라고 하면 웬 습지? 라고 하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반문할 것이다. 나 또한 처음에는 이 개념이 너무나 생소하게 여겨졌다. 그러나 논은 인간이 만든 가장 오래된 인공 습지다. 쌀을 주식으로 하는 우리나라에 있어 논 농업은 오천년 이상 이어져 내려오면서 지역의 주민들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삶과 문화로 정착해 있다. 아울러 논은 인공 습지로서 물새와 수생 동식물 등 주변 생태계와 함께 어울려 있다.

 

실제로 논에 살고 있는 생물들을 조사한 시민 조사 데이터에 의하면 수서 생물이 150여종, 식물이 158여종이나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기 재배 논일수록 이러한 생물 다양성은 더욱 두드러진다.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논은 화학비료도 제초제도 살충제도 최소화 할 수 있는 아예 쓰지 않아도 되는 논환경이 된다고 한다. 그래서 소비자가 원하는 안전한 쌀생산 뿐만 아니라 다양한 생물들이 서로 어울려 조화롭게 살아가는 생태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다.

 

이러한 시민 소비자 단체의 조사결과에 힘입어 유기농 생산자들 사이에 최근에는 오리 농법이나 우렁이 농법대신 이른바 "논생물다양성 농법"이 시도되고 있다. 논생물다양성 농법이란 자연의 순환과 생물 다양성을 통해 흙과 주변 생태계를 복원하고 풀과 벌레를 억제하는 환경창조형 유기 벼농사를 발한다. 유기농법은 화학비료와 농약 투입을 자제하는 농업기술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주변 환경과 생태와 어울려 공존하는 관계의 농업이라는 것을 논생물다양성 농법은 우리에게 주지시킨다.

 

전북지역에서도 남원과 완주 고산 등지에서 논생물 다양성 농법이 2008년 시범 실시되었다. 그리고 이들 지역에서 논생물 다양성 농법으로 재배된 쌀은 그 농사짓기의 어려움과 생태 환경적 가치를 아는 소비자들에 의해 우선적으로 소비되었다.

 

생물다양성 농법의 실천과 습지생태 환경으로 논을 재인식하는 것은 농민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유기쌀은 수입할 수 있어도 우리 논의 습지생태계는 수입할 수 없다"는 소비자들의 지지와 지자체, 시민들의 이해 없이는 불가능하다. 국제 무역 개방으로 위협받는 것은 우리 농업과 농산물만이 아니다. 우리 농촌의 환경과 국민의 먹을거리까지 불안해 지고 있다. 2008년 람사르 총회의 주제어 처럼, 건강한 논습지가 바로 건강한 인간의 삶을 만든다. 이제 논의 생태 환경적 가치에 주목하고 논을 습지로 보전하는 법제화 대책 마련에 지자체와 환경부가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김신재(icoop 전주소비자생활협동조합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