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간 나는 '밥 먹는 자들의 도시'에서 홀로 밥을 먹지 않는 사람으로 살아왔다. 숱한 고뇌와 갈등을 경험하면서 소설 속 여성 못지않게 진한 고독과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지난 25일, 드디어 12일간의 본단식이 마무리됐다. 길고도 짜증났지만 상당히 유쾌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시기였다. 서른세해를 살아오면서 입과 혀, 위장에게 이렇게 긴 휴가를 준 적이 없었다.
본단식 기간 섭취한 영양소는 소량의 칼슘, 나트륨, 칼륨, 마그네슘 등 2리터 생수병에 적힌 영양성분 뿐이다. 스스로도 해냈다는 만족감과 또 다른 역경도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몸도 가뿐해졌다. 준비단식 7일을 포함해 12일 동안 12kg을 감량, 몸무게는 94.4kg에서 82.5kg로 줄었다. 배는 쑥 들어갔고 이중턱이 사라졌으며, 팔다리와 허리의 군살도 많이 빠졌다. 술과 고단백 음식에 시달렸던 몸이 어느 정도 제자리를 찾아가는 느낌이다.
그러나 12일 동안 곡기를 완전히 끊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당분을 전혀 섭취하지 못해 힘을 잃은 다리 근육은 가끔 풀리기도 했고 내장이 옥죄어오는 통증을 겪기도 했다. 회식자리에 가면 맛있게 술과 음식을 먹는 이들의 모습을 보며 선망의 눈길을 던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 옛날 곰이 그랬을 것이다. 5000여년 전 사람이 되겠다는 일념아래 100일간 동굴에 처박혀 쑥과 마늘만 먹어야 했던 그 곰의 심정을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본단식이 일주일을 넘고 열흘에 다가갈 무렵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살 많이 빠졌네'보다 '독한 놈'이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물론 힘들었지만, 사실 나는 '독한 놈'의 반열에 낄 정도는 아니다. 그럼에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1차적으로는 '단식기'를 세 번에 걸쳐 연재하기로 한 독자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고, 2차적으로는 나름의 생존방식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나는 먹고 싶을때마다 단식이 끝난뒤 먹을 것을 리스트로 만들었다. 배고 고파 미칠 지경이 되면 그때 먹고 싶은 음식을 리스트에 추가했다. 그렇게 메모한 음식 리스트를 우선순위로 보면 자장면, 소고기, 카레, 콩나물국밥, 대학구내식당 음식, 국수, 라면, 갈치회다. 눈앞에 어른거리는 음식이 8개에 그치는 것을 보면 아직 배가 덜 고팠던 게다.
그러나 당장 이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도 23일간의 정리단식 기간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정리단식 첫날인 26일 한 끼 당 허락된 음식은 미음 100g과 천연조미료로 만든 된장국 100g이다. 이렇게 이틀간 미음을 먹고 또 일주일간 죽을 먹어야 한단다. 남은 기간은 자극적이지 않은 반찬 2개와 밥 반공기다.
단식을 지도하는 선생님은 정리단식은 본단식보다 더 힘들다고 말했다. 그동안 참았던 만큼 먹고 싶은 충동도 강해지고 술 한 잔 하자는 주변의 회유와 협박도 거세진다는 것이다.
12일간을 고생해 이제 겨우 대학 1학년 때의 몸으로 돌아왔다. 이 기간 고생이 아깝지 않고, 또 마지막 연재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정리단식도 열심히 지켜나가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