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령은 해 본 적이 없어요. 제가 만약 이도령을 맡았었다면 향단이와의 사랑을 꿈꿨을 지도 모르죠. 창극에서 방자를 맡게되면서 인물 연구를 해봤는데, 충분히 춘향이와의 로맨스가 가능하겠더라고요."
남원 국립민속국악원 열린창극 '내사랑 방자야'를 연출한 원세은씨(30). 판소리를 전공한 그에게 창극 무대에서 주어진 배역은 '방자'였다. '춘향'과 '방자'의 사랑을 꿈꾸게 된 것은 어찌보면 무대에서 못다 푼 한을 풀어보기 위한 것. 어차피 '열린창극' 아닌가.
"이도령이 서울로 떠났을 때에도 방자는 춘향이 곁에 남아 춘향이를 보살펴 줬죠. 장소를 현대로 옮겨와 남원 춘향테마파크를 배경으로 했는데, 춘향이한테는 방자의 사랑을 깨닫는 성장 드라마가 되고 춘향이를 짝사랑하던 방자는 이번만큼은 사랑의 결실을 맺게되는 거죠."
직접 시놉시스를 쓰고 박영주씨가 쓴 대본을 각색까지 한 원씨는 "모든 아이디어를 동원하다 보니 연습 중에도 100번도 넘게 대본을 고친 것 같다"며 "'춘향전'을 전혀 다른 각도에서 재해석했다"고 말했다.
"음악적인 느낌도 기존 판소리와 달라요. 판소리나 일반 창극은 계면 선율이 많지만, 이번에는 판소리에 있기는 있지만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았던 경드름이나 메나리를 도입했어요. 재밌는 느낌을 살리면서도 현대인들의 다양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을 겁니다."
원씨는 "과거 판소리가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지금에도 이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국악이 대중들에게 멀어지고 소외되는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그 역시 가요가 좋아 '김건모가 판소리로 목을 틔웠다'는 말에 고등학교 재학 중 뒤늦게 판소리를 시작했지만, 그 맛에 깊게 빠져 직업까지 삼게 됐다.
"그렇게 해보고 싶던 연출이었는데, 막상 해보니 힘드네요. 작창, 안무, 조명, 세트, 배우 등 많은 스탭을 이끌어야 되고 또 그들에게 제 머리 속에서 만들어진 틀을 이해시켜야 하잖아요."
2005년 민속국악원에 입단한 뒤 창극부에 속해 주로 조연출 역할을 해 온 원씨. 연출은 처음이다. 그는 "이번이 데뷔무대가 될 지, 아니면 한 번 하고 짤리게 될 지 모르겠다"면서도 "연출자로서 많은 스탭을 리드한다는 것이 또하나의 커뮤니케이션 과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목포 출신인 원씨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음악과를 졸업하고 중앙대 한국음악과 대학원에 재학 중이다. 은희진 송순섭 안숙선 성창순 명창을 사사했으며, '2005 올해의 예술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