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일탈은 한국서 가수된거죠"

정규 7집 발표한 박정현…사랑의 기운 담아 한층 밝아져

박정현을 만나면 두 번 놀란다. 힘있는 보컬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자그마한 체구와 33살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는 '동안' 때문이다.

 

박정현은 미국 로스앤젤레스 출신으로 한국에 건너온 지 13년, 가수가 된 지는 11년째를 맞았다. 아련하게 떨리는 R&B가 먼저 연상되는 그지만 사랑의 갖가지 감정을 담은 7집 '텐 웨이스 투 세이 아이 러브 유(10 ways to say i love you)'는 한층밝아졌고 팝스럽다.

 

눈에 띄는 노래 제목이 있었다. '청순가련 리나 박'. 리나는 박정현의 영어 이름이다. "실제와 꽤 잘 어울리는 제목"이라고 하자 그는 "유치하지 않느냐. 장난으로 얘기하다가 진짜 그렇게 붙였다"고 수줍은 듯 웃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생각이 영어로 떠올라 바보가 된 것 같았고 말을 안 하니얌전한 이미지가 됐었다"는 그는 한국어 실력도 꽤 늘었다. 이젠 영어보다 한국말이먼저 떠오르고 미국에 가끔 가면 더듬거린다고 한다. 한국어 노랫말이 영미권 팝보다 겹겹의 감정이 녹아있다는 말도 한다.

 

그럼에도 인터뷰 도중 '일탈'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묻기도 했고, 수록곡 중 '치카치카'라는 곡을 설명하며 "아이들이 양치질할 때 쓰는 표현인 걸 녹음하며 알았다"고 재미있어했다.

 

박정현은 인생 최대의 일탈로 가수가 되기 위해 한국에 온 것을 꼽았다. "미국에서 함께 학교를 다닌 친구들이 먼 나라에서 팝스타가 됐다고 하면 여전히 안 믿는다"고 다시 웃었다.

 

◇싱어송라이터, 외롭더라 7집 첫 트랙 '치카치카'부터 신선한 기운이 배어 있다. 맑고 청아한 음색에 앙증맞음을 더했다.

 

초반 트랙은 밝은 R&B 힙합곡, 중간에는 발라드, 후반부에는 모던록 분위기의 곡들로 채웠다. 6집에서 싱어송라이터의 면모를 강조했다면 이번에는 황성제, 조영수, 러브홀릭의 강현민 등 여러 작곡가들이 참여했다.

 

"7집은 6집 작업 때의 고독에서 벗어나 여러 사람과 함께 하니 덜 외로웠어요.

 

정신은 없었지만 오히려 그게 콘셉트가 됐어요. 팝 R&B, 디스코 풍의 노래 등 음악이 밝아졌잖아요. 자작곡인 '비가'가 가장 슬픈 곡인 것 같아요."타이틀곡 '비밀'은 조영수의 프로젝트 음반 '올스타'에 참여한 인연으로 조영수가 선물해줬다. 자작곡 '나 같은 사람 너 같은 사람'에는 윤미래가 랩 피처링을 했다. 강현민은 어쿠스틱 기타의 느낌을 살린 모던록 계열의 '사랑은 이런 게 아닌데','만나러 가는 길'을 줬다.

 

"전 R&B 가수로 불리지만 슬픈 발라드를 좋아하고 장르 구분에는 반대하죠. 그럴수록 대중에게 '다시 생각해보세요'라고 말할 음악을 시도해왔어요. 강현민 씨의 모던록을 담은 것도 평소 이런 장르를 좋아하고 그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죠. 사람들은 쉽게 불렀다고 생각하지만 기교 섞인 창법을 버려야 해 제게는 도전이었어요.

 

"◇음악, 사랑 모두 하고 싶어 7집이 여러 감정의 사랑 노래여선지, 음악생활 10년을 넘긴 박정현은 여자로서 인생에서 해야 할 일들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고 했다.

 

그는 "결혼, 학업 등이 음악에 영향을 주게 되는 것은 싫다"며 "제발 어느 순간음악과 결혼 둘 중 하나만 고르라는 상황이 안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런 순간이 오면 인생에서 실패했다는 생각이 들 것 같아요. 왜 연애, 결혼하면 음악을 못해야 하는 건지. 지금은 두 가지 감정이에요. 남자 친구는 없지만 7살 때부터 하고 싶었던 결혼을 언젠가는 해야한다는 생각과 지금은 너무 바쁘니 남자 친구가 없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죠."그는 "독립적이고 바쁜 남자가 내게 맞는 것 같다"며 "예전에는 나만 보고 기다려주는 남자를 원했지만 남자가 바빠야 덜 미안할 것 같다. 내 일로 인해 죄책감을 느끼는 건 싫다. 다행히 지금은 누군가를 만날 것 같은 기대가 있어 희망적"이라고 말했다.

 

미국 팝 시장 진출에 대한 생각도 "언젠가는 진출하고 싶은 곳"이라고 말했던 6집 때와는 사뭇 달라보였다.

 

"미국에 가면 실망만 할 것 같아요. 성격이 나쁜 건지, 못된 건지, 오래 가수 생활을 해서인지 모르겠지만 지금껏 해온 한국에서의 작업을 놓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기 싫어요. '맨 뒤로 줄 서세요'라는 느낌이랄까요. 6년 전이라면 할 수 있었겠지만 나이가 들면서 '왜 굳이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입니다."그는 "한국에서 즐겁게 음악할 수 있는 환경이 좋다"며 "영어로 노래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이곳에서 해도 된다. 하지만 보아, 세븐 등 미국에서 활동하는 가수들이 한국을 대표해 잘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언젠가 미국으로 돌아갈 생각도 있느냐고 물었다.

 

"부모님은 언젠가 돌아올 것으로 생각하세요. 저도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생각해왔지만 13년을 지내니 점점 그 얘긴 안 꺼내고 조용히 있는 거죠. 하하."학업도 마쳐야 한다.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연극영화과 2학년에 재학 중이던 그는 가수의 꿈을 위해 한국에 돌아오며 휴학을 했고 이후 뉴욕 컬럼비아대 창작작문과(영문과)로 편입했다.

 

"지금도 휴학 중인데 활동 틈틈이 미국으로 돌아가 학업을 마쳐야 해요. 제때 대학 시절을 경험하지 못해 아쉽지만 이젠 학업도 제겐 일이 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