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있는 주말] 마시멜로 이야기

무겁던 어제로 돌아갈 수 없지

본단식이 마무리되고 정리단식 첫날인 지난달 26일 늦은 밤, 장례식장을 찾았다.

 

부친상을 당한 친구를 위로하러 간 자리에는 다른 친구들도 꽤 있었지만 얼큰한 육개장과 돼지고기 수육, 홍어회, 떡 등 흐드러지게 차린 상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날 저녁식사는 어머니가 싸 준 미음과 천연조미료 된장국 도시락으로 이미 해치운 터. 이외의 음식은 일절 금해야 한다.

 

초연한 자세로 상 앞에 앉았다. '12일간의 금욕생활'을 해 온지라 상 위에 널리 고깃덩어리들은 수도자(?)의 마음을 흔들지 못했다. 생수를 술 삼고 공기를 안주 삼아 버틴 지 1시간이 지났을까. 어느 순간부터 눈에 거슬리는 녀석이 생겼다. 일회용 접시에 놓인 빨간 방울토마토 한 개.

 

'영 마뜩치 않은 저 녀석을 먹어 없애버릴까.' 숱한 자기기만이 머릿속을 오갔다. 12일간 비타민을 전혀 섭취하지 못한 몸도 잔머리에 동조하는 등 군침만 흘렀다. 그러나 터지면 봇물인 법. 첫날의 위기를 초인적 인내심으로 그렇게 넘길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마치 '마시멜로 이야기'의 한 대목같은 이야기다. 5살 아이들에게 마시멜로 하나를 준 뒤 얼마간을 먹지 않고 참으면 또 하나를 주는 보상이 있던 것처럼, 날씬한 내일을 위해 오늘의 욕망을 참은 나 자신이 무척이나 대견스러웠다.

 

그러나 이런 대견함은 그리 오래 가지는 못했다. 이틀간 미음을 먹은 뒤 사흘째부터 죽과 소량의 과일을 먹을 수 있게 되면서 욕심이 솟기 시작했다. 정리단식 식단 중 사과 1/4조각이 있었다. 1/4은 되면서 왜 1은 안될까라고 스스로와 타협하며 정해진 양보다 더 많은 양을 먹기 시작했다. 며칠 전에는 선배들의 강권에 못 이기는 척 술도 몇 잔 했다.

 

확실히 살은 빼기는 어려워도 찌기는 쉬운 묘한 놈이다. 아직 죽과 된장국, 나물반찬 한가지로 세끼를 해결하고 있지만 잠시 방심한 틈을 타고 요요가 현상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가장 많은 살이 빠진 것으로 추정되는 등과 배 부위를 중심으로 무언가 꾸물거리는 움직임이 쉴 새 없이 감지되고 있다. 백과사전 수준에서 좀 두꺼운 교과서 정도로 줄었던 뱃살의 접힘도 전화번호부까지 회귀하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하고 있다.

 

기분 나쁜 꾸물거림에 '근 한 달간을 어떻게 살아왔는데'라는 억울함과 함께 '여기서 굴복하면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두려움이 교차한다.

 

전에 없던 삶의 긴장과 스트레스가 생기는 듯한 느낌이다. '비만'을 가진 적이 없던 초고도비만 시절에는 없던, 지켜야 한다는 욕심이 '비만'을 갖게 된 이후에 생기고 있는 것이다.

 

준비단식을 시작한 지난달 7일 이래 어느덧 한 달이 흘렀다. 당시 94.4kg에서 출발했던 몸무게는 한창 줄었을 때 82.5kg까지 내려왔다. 지금은? 두려워서 인지 체중계에 올라서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몸무게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 생활하기에, 건강에 불편만 없으면 되는 것 아닌가? 매일 몸무게를 달며 숫자놀음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다. 아직 모든 단식이 끝나려면 10일가량이 남았다. 건강하게 살기 위해 시작한 단식, 또다시 방탕하고 게으르게 살지는 않겠다는 긴장은 항상 유지하되 작은 변화에 스트레스는 받지 말아야겠다.

 

이 글을 끝으로 날씬하게 살겠다며 단식기를 3차례 연재하겠다던 독자와의 약속은 끝났다. 이제 부담 덜고 방심 좀 하며 살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끊임없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인가 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