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으로 붓을 잡고 쓰는 악필의 대가였던 석전 황욱 선생(1898~1993).
국립전주박물관이 거칠고 질박한 점획으로 기존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경지를 일궜다는 평가를 받아온 그의 기증 유물을 정리한 작품집 「석전 황욱의 서예」를 출간했다. 그의 아들 황병근 선생이 1999년 국립전주박물관에 기증한 고서, 회화, 간찰 등 5000여점 유물 중 석전 선생이 손수 쓴 작품 289만을 추려 한국 서예 연구의 학술적 토대를 마련하고자 펴낸 것.
쌍구법의 해서·행서·초서 등을 즐긴 석전 선생은 환갑 이후 찾아온 수전증을 극복하기 위해 악필로 전환했다. 오른손을 쓰기가 어려워지자, 왼손 악필로 서예가로서는 치명적일 수 있는 수전증을 극복해 마지막까지 예술혼을 불태워 깊고 완숙한 경지를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번 작품집엔 금강산에 들어가 중국의 왕희지, 구양순, 조맹부의 글씨와 조선의 추사 글씨에 전념했던 악필 이전과 창암 필법을 연구해 일체의 기교를 허락치 않는 무심의 정필, 자연스러운 서체를 구사했던 우수악필(1965~1983)·좌수악필(1984~1993) 시절이 담겼다.
작품집 출간을 담당한 이경주 국립전주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석전 선생은 자기 극복과 정진으로 옛 서풍에 자신만의 필의를 덧대 필법 속에 있으면서도 서법을 떠난 넉넉함이 내재된 글씨"라며 "삶의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켜 진정한 예술가의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했다.
고창 출신인 석전 선생은 이재 황윤석 선생의 7대손으로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냈으나, 한국 전쟁과 이념 문제로 아들과 생이별을 했고, 수전증으로 고통받았으나 악필을 시도해 노년의 마지막 꽃을 피워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