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내 고향 전북, 지방연극으론 모든 면에서 최고죠"

전주시립극단 '마춘자 여사의 귀향' 번안·연출한 정진수 전 한국연극협회 이사장

"내가 영문학을 전공했고, 또 미국 유학을 다녀왔습니다. 주로 70∼80년대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작품들을 번역해서 내 극단에서 연출을 했지요. 그 때는 저작권 개념이 약할 때라서 무단으로 할 수가 있었어요."

 

'해외 작품을 국내에 소개해 주는 선구자적인 역할'. 한국연극협회 이사장을 지내고 현재 민중극단 상임연출을 맡고 있는 정진수 성균관대 예술학부 교수(65)에 대한 소개는 이 한 줄로 설명된다.

 

전주시립극단이 제84회 정기공연(21일~22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연지홀)으로 준비하고 있는 '마춘자 여사의 귀향' 역시 그가 번안해 벌써 여러번 무대에 올렸던 작품이다. 부조리 연극으로부터 출발해 비뚤어진 사회와 정신을 역설적으로 제시해 온 세계적인 극작가 뒤렌마트의 대표작 '노부인의 방문'을 원작으로 새롭게 재구성한 것. 개인적으로는 서강대 연극반 공연과 졸업 후 동문들과의 공연, 민중극단에서의 공연 등에 이어 '노부인의 방문'만 다섯번째 연출이다. 시립극단 역시 15년 전 '황금의 사도'란 제목으로 '노부인의 방문'을 공연했었다.

 

"외국 번역극이 다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일부 사람들이 전위적이고 난해한 작품들만 골라 소개한 것이 오해가 된 거죠. 내가 소개한 작품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것은 아니고, 문학성으로 인정받은 작품들입니다."

 

정교수는 "내가 모르는 작품을 잘난 척 하려고 혹은 과시하려고 하는 것이겠냐"며 "내가 읽고 이해하고 재밌을 때, 관객도 좋아하겠다는 작품을 번역해 소개한다"고 말했다.

 

"전주를 이야기하자면 내 고향이란 걸 떠나서 전국에서 지방연극으로는 모든 면에서 최고입니다. 벌써 내가 아는 극작가만 해도 세사람이 있고, 연출가만 해도 일곱명이 있어요. 작품을 썩 잘 쓰고 또 수준이 떨어지지 않는 1급 연출가들이죠. 배우들도 탄탄한 연기자들로 짜여져 있고 공연장 여건도 좋죠. 또 박동화 선생 하면, 우리나라 연극 1세대 아닙니까. 연극의 뿌리가 깊이 자리잡혀 있다고 할 수 있죠."

 

그의 고향은 대야. 친척들은 여전히 전라북도 곳곳에 살고있다. 전북이 낯선 땅이 아닌 만큼, 작품도 이 지역 어느 소도시를 배경으로 하고 전라도 사투리를 푸짐하게 넣었다.

 

"보통 연극은 주인공이 한두명으로 정해져 있지만, 이 작품에서는 시민 전체가 주인공입니다. 그래서 배우들이 집단으로 출연하는 군중씬이 많죠. 민주사회 주인은 국민이라고 하지만, 가만히 보면 국민들도 이익집단입니다. 이 작품은 이기주의에 함몰된 시민들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교수는 "경제적인 이익에 눈 먼 시민들이 똘똘 뭉쳐 한 사람을 살해하게 되고, 교장선생님이나 신부처럼 양심을 가지고 있는 이들도 결국 타협하게 된다"며 "우리 사회에 그런 일이 없다고 보냐"며 반문했다. 그는 "시민 각자는 죄의식이 없다"며 "나라 안팎으로 시민들의 책임성이 중요한 시기"라고 덧붙였다.

 

"내 연출 스타일은 평범합니다. 구경하는 스타일이지요. 연극은 삶입니다. 인생의 경험이 담겨야 하는데, 여기 배우들은 연륜이 있어 좋네요."

 

캐릭터에 배우를 맞추기도 하고 배우에 캐릭터를 맞추기도 하지만, 이번 공연에서는 배우에다 캐릭터를 맞춰 배우 특성이 살아나게끔 할 생각이다. 그는 "배우들이 애드리브를 곧잘 한다"며 "극 상황에 크게 걸리지 않으면 그냥 놔두는 편"이라고 했다.

 

"영국 배우 로렌스 올리비에는 팔십까지 연기를 하다 돌아가셨는데, 한 작품 끝나면 받는 스트레스가 엄청 났다고 합니다. 다음에 나를 불러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매번 평가받는 것이 예술이고, 그런 점에서 예술가로서 개인적 삶은 불행하고 고단하지요."

 

그는 연출가는 "아무 것도 하지 않지만 모든 것을 하는 존재"라는 말했다. 무대에서 보이지는 않지만, 무대에서 보이는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모두 연출자의 동의가 있어야만 가능하기 때문. 평가는 연극계 원로도 피할 수 없다. 대학시절 부터 연극을 하며 그 역시 매번 평가를 받아왔지만, 고향 관객들 앞에 서는 일은 기분 좋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