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窓] '기자는 같은 편이 되라'는 정부 - 김성중

얼마 전 여야가 극한 대치로 치닫던 미디어법안에 대한 사회적 논의기구가 마련됐다. 이 기구는 100일을 기한으로 미디어법에 대한 국민 여론과 전문가 의견 등을 수렴, 법안에 반영하게 된다. 하지만 벌써부터 기구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비관론이 나온다. 이같은 주장의 밑바닥에는 정부여당의 '언론장악 음모'가 자리한다.

 

그런 와중에 남태평양 3개국 순방을 마친 이명박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수행기자단 간담회에서 밝힌 언론관은 가히 충격적이다 못해 두려운 생각까지 들게 한다.

 

이 대통령은 순방 성과를 설명하면서 "어려울 때는 '잘 한다 잘 한다' 해야 더 잘할 수 있다. 어려울 때 자꾸 '못 한다 못 한다' 하면 자꾸 못 한다”며 언론의 협조를 당부했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니까.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이 대통령은 이어 "한 출입처에 오래 출입하면 같은 편이 되는 것이 아니냐.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무조건 그렇게 생각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사실 일반인들이야 기자세계의 속성을 자세히 알기는 힘들겠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이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시사하는 바가 너무 심각하고 중차대하다. 국가의 최고 통치자가 바라보는 기자에 대한 시각과 언론관이 그대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물론 지역이건 중앙이건 특정 관청이나 기업 등에 출입하면 그 곳에 근무하는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가까워지는 게 인지상정이다. 예컨대 '한 솥 밥'을 먹다보니 출입처 사람들의 인간적인 고통과 고민을 들어줄 기회도 많다. 또 출입처의 입장을 그나마 잘 안다는 점도 기자와 취재원의 사이를 이어준다.

 

더구나 한국사회 특성상 좋든 싫든 평소 부대끼는 사람들과 소주잔을 기울이는 일도 있다. 그러나 야박한 얘기지만 사실 그런 자리도 기자에게는 취재 공간이다. 공식적으로는 못할 말이 나오고 숨은 얘기를 들을 수 있어서다. 별 것 아닐 것 같던 술자리의 잡담이 특종으로 변해 세상을 뒤집는 경우가 그래서 종종 생긴다.

 

따라서 기자들이 매사 출입처 편을 든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언론사간 경쟁 구도를 보더라도 기자가 출입처 입장만 대변했다가는 선배나 회사로부터 불벼락을 맡는다. 매체가 난립한 상황에서 지면과 보도의 차별화를 이루지 못하는 언론은 존재의 이유가 없어 도태되기 때문이다. 출입처 입장을 모든 언론이 똑같이 되뇌는 상황을 가정해보라. 누가 신문을 골라 읽고 방송 채널을 돌리겠는가. 그래서 언론사는 혹시라도 이 대통령이 그토록 원하는 '같은 편'이 되지 못하도록 기자들의 출입처를 수시로 바꾼다.

 

이런 맥락에서 기자를 '건전한 비판자'가 아닌 '같은 편이 되어야한다'고 여기는 이 대통령의 발언은 언론인의 비판정신에 대한 최악의 폄훼다. 더구나 '(오래 출입하면 같은 편이 된다고) 무조건 그렇게 생각 한다'는 말은 기자들에 대한 강요와 협박으로도 다가온다. 대통령의 생각은 특히 언론을 통폐합하고 보도지침으로 모든 언론을 '앵무새'를 만들었던 지난 독재정권의 언론장악과도 별반 다를 게 없다.

 

그래서다. 정부여당이 죽기 살기로 밀어붙이는 미디어법안의 속셈과 배경이 정확하게 읽힌다. '방송겸영에 따른 조중동 신문의 여론 독점', '지방언론 죽이기', '일자리 창출 효과 전무' 등 등. 미디어법안의 폐해를 지적하는 백 마디 말보다 '기자는 같은 편이 되어야 하며 나는 무조건 그렇게 생각 한다'는 대통령의 한 마디가 2009년 3월 대한민국 언론위기를 가감없이 보여주지 않는가.

 

/ 김성중(편집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