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만한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

올 아카데미 최다수상작

내용을 알기 전부터 피하게 되는 영화들이 있다. 마치 떡볶이를 먹고 체했던 안 좋은 기억 때문에 평생 떡볶이를 먹지 않는 것과 비슷한데, 이 전에 봤던 같은 장르의, 나쁜 기억을 심어 준 영화들 때문이다. 나름의 기준이 생긴 것.

 

예를 들자면, 조직폭력배가 등장한 한국 영화는 제목도 읽지 않는다. 키아누 리브스가 출연한 영화는 보기가 꺼려진다. ('매트릭스' 이후에 '콘스탄틴'(2005)이나 '지구가 멈추는 날'(2008)은 조금 난감했다.) 각종 상을 휩쓴 예술성과 작품성이 뛰어나다는 평을 받은 영화들도 쉽게 봐지지 않는다. 작품성과 오락성을 함께 갖기는 힘들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것이든 예외는 있는 법이고 이번에도 예외의 선택을 하게 됐다.

 

대니 보일 감독의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포함해 8개 상을 휩쓴 작품이다. 총 제작비가 1500만 달러인 이 '소규모' 영화는 아카데미 시상식 전부터 각종 영화제에서 상을 받으며 그 저력을 과시했다. '시상식 영화'임에도 '오락성'을 비롯해 많은 것들을 기대하게 만드는 영화. 원작 소설을 배경으로 영화에 맞게 과감한 가감을 시도했고, 익숙하지 않은 인도 이야기가 눈길을 끌면서도, 막상 영화를 보게 되면 할리우드 영화가 아닌가 의심이 들만큼 자연스럽다.

 

영화의 첫 화면에는 이런 질문과 보기가 뜬다.

 

'자말은 어떻게 백만장자 퀴즈쇼에서 최종 상금이 걸린 마지막 단계까지 오를 수 있었을까?' 'A. 속임수로 B. 운이 좋아서 C. 원래 천재라서 D. 영화 속 얘기니까'

 

질문에 등장하는 자말(데브 파텔)은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뭄베이 빈민가 출신인 그는 거액의 상금이 걸린 '누가 백만장자가 되고 싶은가'에 참가한다. 모두의 예상을 깨고 정규 교육 한번 받은 적 없는 고아가 최종 라운드에 오르자 모두들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결국 부정행위를 의심해 경찰에 의해 체포되는 상황까지 이른다. 그리고 이어지는 경찰의 심문. 속임수를 실토하라는 경찰에게 자말은 문제를 맞출 수 있었던 이유를 말하기 시작한다. 한 문제 한 문제가 자신의 삶 속에서 일어났던 이야기, 자신의 기구한 인생이 퀴즈의 답이자 속임수임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관객도 그의 삶을 함께 보게 된다.

 

자말의 삶은 인도의 실상과 인권 문제의 경계에서 떠나지 않는다. 어느 재미있는 영화가 그렇듯 사랑 얘기도 빼놓지 않았다. 권선징악도 뚜렷하고, '목표를 가지고 열심히 살자' 라는 심심한 교훈까지 준다. 자칫 무료한 스토리로 전락해 버릴 수 있는 이야기가 사실적인 카메라워크, 빠른 화면 이동과 만나 신비한 나라로 여겨지던 인도의 실상을 말한다.

 

쉴 새 없이 가슴이 두근거릴 것이고, 끊임없이 억장이 무너질 것이다. 그것이 인도와 자말의 이야기이자 지어진 운명을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