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인생] 장수군 위상양 보건의료원장

"의료 손길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야죠"

"지금 내가 살 부비고 사는 곳이 고향이죠. 눈 감는 날까지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이곳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을 뿐입니다"

 

장수군엔 도시의 화려하고 편안한 삶을 뒤로하고 시골 어르신들을 위해 의료봉사하며 소박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있다.

 

위상양 장수군 보건의료원장(66)이 그 주인공이다.

 

지난 2006년 10월 장수군보건의료원장에 부임한 이래 하루도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다는 위 원장은 틈만 나면 어렵고 못배운 농촌 이웃을 위해 건강지킴이 역할을 한다.

 

적지 않은 나이에 지칠 법도 한데, 환자를 돌보는 위 원장의 눈동자엔 언제나 젊은이 못지않은 열정이 가득하다.

 

"요즘 평균수명 연장과 저출산으로 인구고령화가 심각합니다. 특히 농촌지역은 고령화를 넘어 초고령사회로 접어들면서 어느 지역보다 복지의 손길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습니다. 이곳에선 나이는 숫자에 불과합니다. 의료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서 보살피는 게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 때문에 제가 이곳 장수까지 왔으니까요"

 

봉사를 하는데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는 위 원장은 아직도 주민들을 위해 해야 할일이 많다고 한다.

 

위 원장이 부임하면서 장수군보건의료원에도 적지않은 변화가 생겼다.

 

직원들의 친절교육을 시작으로 바쁜 농사철이면 새벽같이 들에 나가는 농촌현실에 맞춰 의료원 진료시간을 앞당기고 원거리 환자들을 위해 셔틀버스를 운행하며 주민중심의 의료서비스를 실시했다. 보건진료소를 주민들의 건강증진시설이 갖춰진 현대화시설로 신축하는 등 마을별 의료시설을 강화했다.

 

특히 평소 환경문제에 지대한 관심을 가져온 위 원장은 부임과 함께 원장실 전원끄기 등 보건의료원 청사 에너지 절약사업에 돌입했다.

 

실내조명등 감축으로 갑자기 달라진 청사분위기에 낯설었던 직원들도 이제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불필요한 전원을 끄고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기가 생활화되고 있다.

 

위 원장이 다른 지역이 아닌 장수군을 찾게 된 것은 1971년 군 제대 후 장수군보건소장으로 사회의 첫발을 내디디면서 맺은 인연에서 비롯됐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은 변한 게 없는데, 사람들의 생활수준도 높아지고 제법 도시의 모습을 보이며 발전된 장수군을 보니 절로 흐뭇함이 생기더군요"

 

위 원장은 "35년 만에 찾은 장수군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면서 "그 당시에는 먹고 살기도 바쁘고 딱히 먹고 살 것도 없었는데, 지금은 농사를 지으면서도 고소득을 올리는 농가들을 주위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높아진 생활수준에 비해 열악한 의료수준은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면서 "아파도 제때에 치료받지 못하는 농촌의 열악한 현실을 지켜보면 농촌의료봉사 의지를 다시 한 번 다지게 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처음 위 원장이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그것도 오지라고 알려진 장수군에서 의료봉사를 펴겠다고 했을때 주위에선 "굳이 시골에까지 가야겠느냐, 도시에서도 충분히 봉사활동을 할 수 있지 않느냐"라며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전주에서 잘 나가던 병원을 접고 시골로 들어가려는 위 원장의 행동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병원을 찾지 못해도 의료시설과 인력이 부족해 혜택을 누리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위 원장의 확고한 의지에 이제는 모두가 위 원장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고 있다.

 

장수군을 제2의 고향으로 여기며 생을 마감하기까지 장수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고 싶다는 위 원장은 '의료기술자가 아닌 사랑으로 인술을 베푸는 의사'로 지금 이 순간도 위 원장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찾아 의료의 손길을 베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