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힘 2050] 무대 뒤의 마술사 강지영 분장사

더 예쁘게…더 우습게…더 완벽하게…"캐릭터의 개성을 색칠하죠"

무대 위는 언제나 화려하다.

 

그 화려함을 위해 남몰래 바쁜 손놀림을 움직이는 그림자 같은 존재. 수없이 그렸다가 지워보고, 또다시 그리는 과정속에 수많은 캐릭터가 만들어진다.

 

배우들이 무대 뒤로 와서 "이게 떨어졌네” "번진 화장 좀 고쳐줘”하고 요청할라 치면, 부리나케 화장품 가방을 들고 달려오는 그. 5kg은 족히 되어 보이는 가방만 봐도 보통 체력으로는 버티기 힘들 것 같다.

 

강지영씨(34)는 베테랑급 분장사. 배우들이 얼굴을 맡기면, 캐릭터를 살리는 마법을 펼친다. 손길이 닿으면 평범한 얼굴도 입체감이 있는 무대용 얼굴로 거듭난다.

 

"모든 분장을 소화할 수 있지만, 연극 분장사로 불리고 싶어요. 눈 코 뜰새없이 바쁠 때는 화장실에 갈 여유도 없지만, 그 직함이 제일 맘에 듭니다.”

 

아버지가 유독 클래식을 좋아해 어렸을 때부터 수많은 공연장을 드나들었다. 시시각각 변화되는 배우들의 표정, 땀방울로 뒤범벅된 연극 무대는 그에겐 꼭 첫사랑의 열병과도 같았다.

 

"배우는 될 수 없을 것 같아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봤죠. 꼭 대학을 가야 한다는 생각도 없어 뒤늦게 문턱을 밟았더랬습니다.”

 

1993년 전국적으로 메이크업이 붐을 이뤘다. 당시 학원 수강료만 해도 40만원. 고액이었으나 앞다투어 배우겠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도내에선 메이크업에 대한 인식 자체가 전무후무하던 시기였기에 그의 재능을 인정해줄 만한 무대는 드물었다. 극단 황토는 1993년부터 현재까지 그가 몸담고 있는 곳. 가뭄에 콩나는듯한 공연으로 목구멍은 포도청이 돼 전업 밥벌이의 꿈은 접었다. 남앞에 나서는 것을 안 좋아해 학원 강사는 죽어도 못한다고 손사래를 쳤던 적도 있었지만, 10년 째 MBC 아카데미 뷰티스쿨 강사로 뛰고 있다.

 

메이크업과 분장 메이크업은 얼핏보면 비슷할 것 같지만, 분명 다르다. 더 예쁘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메이크업과 캐릭터의 개성을 살리는데 방점을 찍는 분장 메이크업은 때로는 배우를 얼마나 망가뜨리느냐에 따라 더 많은 박수를 얻을 수도 있다.

 

"여배우들은 나이가 많은 역을 맡더라도 주름살을 지워달라는 요청을 할 때가 있습니다. 눈썹, 피부 상태 등 개인적인 컴플렉스를 보완해달라는 솔직한 요구도 하구요.”

 

연극 '빨간 피터의 고백'의 주인공 김준씨의 경우 땀이 유독 많았다고. 원숭이 분장을 위해 붙인 털을 떼어냈다 붙였단 하는 과정은 그야말로 고역. 지방 순회 공연의 경우 미리 본을 떠서 사용하기도 했지만, 배우들의 특성에 따라 그가 함께 해야 하는 순간도 있다.

 

"모니터할 때마다 가시방석에 앉은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시간이 좀 더 있었으면 더 잘 할 수 있었을텐데 그런 아쉬움이 드는 거죠.”

 

연극은 돈이 안 벌리는 게 숙명인 판이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공연 수익이 신통치가 않을 때가 많기 때문.

 

"작품을 올려 얻어진 수익금은 함께 나누는 게 연극이에요. 순식간에 스타를 만들어내고, 대박을 터뜨리는 곳보다 삶의 담백함을 배울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일확천금을 벌 수가 없는 건 어쩜 너무 당연한 일 아닌가요. 좋아서 시작한 일 끝까지 하는 게 저의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