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가 화장실에서 5000원을 주웠다. 순간 수업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돈을 호주머니에 넣고, 교실로 향하는 아이. 옆 짝꿍이 5000원을 잃어버려 범인을 잡기 위해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겁에 질려 바들바들 떨던 아이는 울며 이야기했다.
"제가 주운 걸 구름도 보고, 돌맹이도 보고, 소나무도 봤다구요."
동화 「해바라기를 닮은 아이」의 한 대목. 이야기를 꺼낸 동화구연가 권옥씨(45·한국반달문화원 전북지부장)의 눈엔 그새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제가 그런 경험이 있었거든요."
목소리가 가늘고 작아 동화구연을 한다고 나섰을 때 주변 만류도 있었다. 소극적인 데다 남 앞에 나서는 것을 안 좋아해 누군가를'깔깔' 웃도록 만든다는 것은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엄마, 왜 토끼랑 생쥐랑 여우랑 목소리가 다 똑같아?"
10년 전 둘째 아이의 우연한'딴지'에 의해 그는 동화구연을 공부하게 됐다. 독서지도사 자격증을 먼저 땄지만, 동화구연에 애정이 더 기울었다. 평생 첫 만남의 흥분을 고스란히 간직하는 동화. 초면이든 구면이든 예외 없이 행복하고, 달콤한 느낌과 생각이 고여 오랫동안 단침을 삼키게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기 때문.
"감동없이 전달하면 정말 그럭저럭한 이야기가 돼 버리거든요. 신나는 장면에선 아이들 표정이 '둥' 떠 있거나 엉덩이가 들썩들썩한 게 보이고, 슬픈 대목에선 훌쩍거리는 소리가 이쪽 저쪽에서 들려요."
동심에'쏙' 빠져 울고 웃는 탓에 동화만 나오면, 표정이 먼저 반길 정도. 하지만 동화구연이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집중력이 짧은 아이들을 이야기 속으로 끌고가는 것이 관건. 아이들은 쉽게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하기 때문에 분위기가 흩어지면, 쉽게 판이 깨지고 만다. 그래서 그의 수업 철학은 단순하다. 자신이 주인공이 돼서 한바탕 신나게, 재미나게 놀자는 것이다.
"어린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재밌었다''재미 없었다' 등의 단답을 합니다. 어른들은 곧바로 확인하고 싶어하지만, 역할극을 하면서 차곡차곡 마음에 쌓아가는 게 보이거든요. 더 즐길 수 있도록 충분히 기다려주시는 게 필요합니다."
그의 강좌는 아이들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어르신, 교도소 재소자까지 마음속에 자라지 않은 저마다의 아이에게 성장할 기회를 주는 일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일이기 때문.
"최명희문학관의'당신과 나를 이어주는 5가지 이야기'에서 전주교도소 수용자들을 대상으로 동화구연을 맡았을 땐 솔직히 겁이 덜컥 났었어요. 고민 끝에'토끼와 호랑이' 이야기를 꺼내들었죠. 바보 호랑이가 지혜로운 토끼의 꾐에 넘어가는 장면에서 리듬을 얹어 바보 호랑이를 흉내냈더니, 웃음이 와르르 쏟아졌어요. 사람이 욕심이 생기면 아둔해지잖아요. 최대한 목소리는 바보스럽게, 표정은 일그러지게. 이렇게요."
그가 「소공자」를 마르고 닳도록 읽었듯, 한 권의 동화라도 '찬찬히 제대로' 읽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소박한 바람이다. 마음이 강해지길, 지혜로운 이들이 많아지길 바라기 때문. 할머니·할아버지처럼 경험과 연륜이 쌓여 구수한 맛을 내는 이야기를 술술 풀기까지 그는 '새싹 할머니'를 자처할 계획이다.
"어린아이 뿐만 아니라 어른들 마음까지 크고 반짝이는 별을 박아줄 수 있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그의 순수함이 그대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