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20~30대에는 제가 가진 것이 전부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지금의 나이가 돼보니 여배우는 제 나이부터라는 것을 알게됐습니다. 사랑에서도, 경험에서도 이제부터가 진짜죠."최명길(47)은 당당했다. 언제나 그랬듯. 40대 후반이지만 그는 아직도 드라마에서 누구의 엄마로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주인공이다.
23일 종영하는 KBS 2TV '미워도 다시한번'은 그런 최명길에게 힘을 실어주는 작품이었다. 재벌이자 여성기업인인 한명인의 사랑과 운명을 그린 이 작품은 중년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동시에 여배우들의 수명을 연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소지섭 주연의 SBS TV '카인과 아벨'과 붙어 시청률에서 팽팽한 접전을 이루면서 중년 드라마의 가능성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기쁜 것은 이 드라마를 하면서 선배, 동료 연기자들로부터 격려와 축하 전화를 많이 받은 것이에요. 전화하는 분들이 무척 기뻐했어요. 이런 드라마가 없었으니까요. '미워도 다시한번'을 계기로 다양한 소재로, 다양한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드라마가 많이 나오기를 바라요. '꽃보다 남자'도 있어야겠지만 이런 드라마도 있어야죠."최명길이 연기한 한명인은 비운의 여자다. 젊은 시절 집안에서 반대하는 가난한화가와 사랑의 도피를 했지만 교통사고로 연인은 잃고 자신은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린다. 이후 아버지가 정해준 남자와 정략결혼을 하지만 그 남자는 다른 여자와 30년간 관계를 이어오며 딸까지 낳았다.
이 사실을 나중에야 알게 된 명인은 분노에 치를 떠는데, 그때 죽은 줄로만 알았던 옛 사랑이 다시 자신의 앞에 나타나 혼란을 더한다.
"굉장히 독특한 상황이죠. 하지만 들여다보면 전혀 남의 일 같지만은 않아요.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되죠. 한명인은 순정파예요. 젊었을 때는 사랑이 전부라고 생각했지만 그 사랑이 이뤄지지 않은 후에는 마음을 닫고 가업을 잇는 일에만 열중하죠. 그러다 서서히 남편에게 마음을 열려는 순간 배신당했다는 것을 알게 되니 참 가여운 여자죠."배신당한 것을 안 순간 한명인은 가차없는 복수에 나섰다. 자신이 가진 부와 권력을 이용해 상대가 숨도 쉬지 못하게 옥죄며 분노를 발산했다. 그러나 그의 복수는 '막장'과 차원이 달랐다. 기업인으로서 카리스마 넘쳤던 그는 복수에서도 품위를지키며 대차게 나섰다.
"한명인이 멋있다는 말을 참 많이 들었어요. 파워풀하다는 거죠. 제가 봐도 멋있어요. 그래서인지 요즘 미용실에서 '한명인 스타일'을 요구하는 분들이 많대요.
제가 다니는 미용실에는 실제 여성 기업인이 거의 매일 와서 한명인과 똑같은 헤어스타일을 하고 간대요.(웃음) 40~50대의 패션 트렌드를 주도할 수 있다는 것도 행복했어요. 여배우로서 그런 것도 중요하거든요."그는 이 드라마의 성공을 자신했다고 말했다.
"이번 드라마는 제작진이 제게 거는 기대 때문에 좀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충분히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도 있었어요. 개인적으로도 언젠가는 이런 드라마를 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는데 적기에 만난 것 같아요. 최명길이라는 배우가 이 나이에 다시 사랑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쁘죠."1981년 MBC 공채 13기로 연기생활을 시작한 최명길은 1994년 영화 '장미빛 인생'으로 낭트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으면서 여배우로서 최고 전성기를 누렸다. 이후 결혼과 출산의 과정을 거치면서 그는 자연스럽게 중년, 주부의 길로 접어들었다.
"행복한 가정이야말로 오늘의 저를 있게 한 가장 큰 원동력입니다. 결정적인 힘이죠. 저라고 왜 여배우로서 어려움이 없었겠어요? 하지만 그럴 때 정신없이 가족 뒷바라지를 하며 잘 넘어갔던 것 같아요. 애들이 초등학교 4학년과 1학년인데 이번 드라마 끝나면 요리를 배워 맛있는 것 좀 많이 해달라네요.(웃음)"그는 "20대에 내 이름을 한번 더 각인시킨 것보다 지금 내 나이에 각인시킨 것이 몇배로 더 큰 보람이었다. 그런 점에서 작가님과 감독님께 감사드린다"면서 "여배우로서 살아가는 데 있어 포인트를 찍어준 작품이고 내가 다시 힘을 얻을 수 있게해줬다. 앞으로도 내 나이에 맞게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